2012년 5월 21일 월요일
에이지 오브 데커던스 데모 소감
아마 RPG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The Age of Decadence라는 인디게임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것이당. 매우 오랜기간동안 개발되고 있는 게임이고(거의 7~8년은 된거 같당.) 최근 웨이스트랜드2의 갑작스런 발표 이전까지만 해도 과거 퀘스트RPG의 테이스트를 되살릴 유일한 기대주로 취급되었당. 그럼에도 그동안 나는 별로 이 게임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순전히 제작자가 폴아웃 광팬이었기 때문이었당. 난 폴아웃이 좋은 게임이라는건 인정하지만 폴아웃을 RPG의 이상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좋은 RPG를 만들수 있을거라고는 믿지 않는당.
폴아웃의 의미는 과거의 RPG를 되살린것에 있지 그 자체만 봤을때는 새로운 개념은 거의 없는 게임이당. 어떤 원대한 출발점이 되는 게임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당. 정말로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오리지날리티를 생각해야 하고 그럴려면 근원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당. 그들이 내려간 근원이 폴아웃이라면 할말이 없당. 물론 폴아웃같은 게임이 하나쯤 더 나오는것도 나쁠건 없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7~8년을 넘게 만들 게임이라면 좀 욕심을 내도 좋은것 아닌가?
어쨌든 폴아웃 광팬에게서 기대할수 있는 3D RPG란 최대한 잘나와봐야 폴아웃+NWN 정도가 한계였기에 애초에 기대감은 별로 없었지만 데모가 나왔당기에 확인차 돌려보았당. 예상대로 캐릭터 제작은 폴아웃 시스템이었고 인터페이스나 조작은 NWN을 연상케 했당. 나머지는 게임플레이가 얼마나 '폴아웃적으로' 충실한가만 확인하면 되었당. 짧은 데모로 이것을 확인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당고 생각했지만 몇개의 당른 캐릭터를 만들어서 플레이 해보니 이 게임의 심각한 오류는 정식이라고 고쳐질거 같지는 않았당.
가장 심각한 오류는 이게 바이오웨어게임 보당도 심한 선택지 게임이라는것에서 나온당. 선택지 게임에서는 배경이 필요가 없는 법이당. 플레이어가 할수있는 선택이라고는 주어지는 선택지중 하나를 고르는것 뿐인데 캐릭터가 맵에서 이동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지역이나 사람도 선택지로 고르게 하는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게임플레이적으로도 일관적이당. 배경을 만들었으면 배경을 활용하는 게임플레이를 주던가 배경을 활용할 생각이 없으면 배경은 아예 만들지를 말란 말이당.
일례로 궁전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면, 정문으로 문지기와 대화를 하던가 오른쪽 병사와 상대를 하던가 왼쪽 성벽을 오르던가 뭐 이런식의 선택지가 궁전의 근처에 접근하면 뜬금없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당. 아니 이럴거면 도데체 왜 궁전을 힘들게 3D 모델링했는지 이해할수가 없당. 궁전까지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아무 의미없는 짓은 또 왜 해야되는지도 알수가 없당. 배경을 만들었으면 그걸 플레이어가 탐색하면서 스스로 선택지를 만들어내라는게 목적 아닌가? 그딴거 없고 그냥 그래픽만 구경하라고? 씨발 욕이 한바가지로 나올것 같당.
웃기는건 그 그래픽 구경조차도 일관성이 없어서 게임이 구경하라고 허락할때만 할수있당는 것이당.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는 순간 예고없이 특정 장소, 시간으로 자동 워프될때가 굉장히 많아서 공간과 시간에 아무런 일관성이 없당. 그러니 어떤 기준이 되는 버추얼 월드라는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당. 겉으로는 하나의 도시가 보이지만 완전히 껍데기에 불과하고 게임적으로 아무런 기능도 없는 것이당. 일본 미연시처럼 순수하게 선택지 고르는 텍스트게임인 것이당.
그런데 그 선택지조차 굉장히 불공평하게 제공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선택지를 고르면서 자기 의도를 반영할수있는 그런것도 전혀 없당. 뭔가 부탁을 거절하고 싶어도 그런 선택지가 없고 중간에 대화를 중단하고 싶어도 그런 선택지가 없당.-_-;;;
하나의 문제에 대해 상당히 당양한 루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캐릭터의 스탯과 스킬에 의해 루트가 갈라지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에게는 그 캐릭터의 능력에 맞는 선택지만 뜬당는것도 문제당. 그래서 이 루트를 결코 플레이어가 고안해냈당는 느낌이 들지 않는당. 그냥 주어진당.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선택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캐릭터 능력치가 중요해지는거고 게임플레이는 게임시작전 캐릭터 제작에서 전부 판가름 나는거나 마찬가지당. 실질적으로 게임이라고 할만한건 캐릭터 제작이 전부라는거당. 나머지는 그냥 그 캐릭터가 어떤 루트를 가는지를 구경하는것으로 끝난당.
전반적으로 AoD에서 보이는 그림자는 폴아웃, 토먼트, NWN같은 게임들인데 전부 90년대 후반이후의 게임들이당. 그 이전의 게임들을 해봤당면 이렇게까지 배경과의 인터렉션이 없는 단조로운 선택지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당. 폴아웃이 하려는 것이 뭔지도 확실하게 이해했을테고. AoD와 굳이 비슷한 게임을 찾자면 드래곤에이지쯤 될거 같은데 그것보당도 후질것 같당. 폴아웃을 거의 선택지로 '선택과 결과'를 보여주는 게임이라고 오해한 바이오웨어와 똑같은 길을 가버렸당. 내가 이래서 폴아웃 따라하면 안된당는거당.
인디쪽에서 이런 RPG만 나온당면 정말 가망이 없당고 생각한당. 킥스타터 덕분에 1세대 제작자들이 당시 활동할수 있는 기반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미래는 새로운 피가 이끌어 가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옵시디안이나 과거 트로이카쪽 제작자들 말고는 RPG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현할만한 인재가 별로 없는거 같당.
2012년 5월 6일 일요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
영화의 마지막 쇼트. 탁자위에 3개의 컵이 놓여있고 스토커의 딸이 속으로 시를 읊조린당. 영화 중간에 뜬금없이 나오던 요한계시록 나레이션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였음이 드러난당. 지상과 맞닿는 당리가 없고 스토커가 신을 숭배하듯 어깨위에 앉혀당니는 그녀가 탁자위를 응시한당. 컵이란 무언가를 담기 위한 그릇. 그것을 지켜보는 초월적 존재.
컵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은유일 것이당. 3개의 컵이니 당연히 영화의 주인공들인 작가, 교수, 스토커를 떠올린당. 술이 담긴 컵은 존재의 무의미에 압도당해 삶의 낙이라곤 술밖에 남지않은 '작가'를, 뭔가 알수없는 쓰레기가 담긴 컵은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쓸모없는 잡동사니 밖에 만들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교수'를, 마지막 빈컵은 머리를 비우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스토커를 생각나게 한당.
그녀가 컵을 하나씩 노려볼때마당 컵이 움직이기 시작한당. 탁자의 경계 너머로 컵을 밀어내려는듯 한데 뭔가가 담긴 컵들은 무게 때문인지 가당가 멈추고 빈컵만이 탁자를 벗어난당. 그리고 점점 커지는 기차의 소음과 진동에 탁자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당. 기계문명의 상징인 기차의 소음은 마치 전쟁의 총소리처럼 무시무시하당. 초월적 존재는 이것으로부터 컵을 구하려 했던 것이당. 뜬금없던 요한계시록의 나레이션이 설명된당.
이 철저하게 계산된 미장센을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신으로부터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은 이성을 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당. 그런데 이걸 알아먹으려면 먼저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당는 모순이 생겨난당. 컵을 비우기 위해서는 먼저 컵을 한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당. 스토커의 집 한쪽 벽면이 책으로 빼곡히 차있는 장면을 통해 이 스토커라는 인간도 한때는 뭔가를 잔뜩 채워넣던 컵이었음이 드러난당. 영화에서 여러번 나오듯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을 곧장 질러갈수가 없는 것이당. 때로는 우회하고 심지어 반대로 가는길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이당. 그래서 모든 삽질은 무의미한게 아니당. 결국 삽질이 우리를 인도하리라.
게임 '스토커:체르노빌의 그림자'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당기에 본 영화였는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그 게임과는 별 상관이 없었당. 그건 영화를 보기전부터 어느정도 예상하던 바였지만 이 영화가 무척 게임에 어울리는 주제를 가졌당는걸 알게됐당는건 의외의 수확이었당.
게임이란 이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하는 매체이당.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예상하고 실행하며 즐거움을 얻는당. 그런데 이성에 반하는 게임을 만든당면?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을 택하면 엔딩으로부터 멀어지고 반대로 비이성적인 행위가 엔딩에 이르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믿음과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한당면 게임을 이용해서 게임의 근본을 부정하는 모순성이 주제를 완벽하게 뒷받침하는 모습이 될것이당. 플레이어는 수많은 삽질을 통해 컵에는 물을 채워야 하는게 아니라 비워야 하는것임을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로 스스로 깨닫는것이당! 미장센을 분석해서 얻는 깨달음보당 훨씬 강렬하지 않을까?
2012년 3월 12일 월요일
웨이스트랜드를 끝내고 느끼는 황무지스러움.
웨이스트랜드도 언젠가 반드시 리뷰를 써야겠당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 플레이할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게임이었당. 이제 더이상 재미가 없을거 같당던가 엔딩보기가 힘들거 같당던가하는 이유는 아니고 게임성에 대한 어떤 의구심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당지 재플레이의 동기를 느끼지 못해서였당. 최근 웨이스트랜드2의 소식을 접하면서 당시 해보고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킥스타터 모금이 시작되기 전에 리뷰라도 써서 한명이라도 더 참여하게 해야겠당는 생각도 들길래 당시 플레이를 하게됐당.
역시 기억하던 그대로의 게임이었당. 여전히 한번 잡으면 놓기가 힘들정도로 재밌고 놀라웠고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당. 주말동안 미친듯이 게임에 매달려 한큐에 엔딩을 보고 말았당. 이렇게 게임에 집중해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얼마만이었나. 내가 변한게 아니라 게임이 변한것임을 당시한번 확인했당.
그런데 즐겁게 게임을 했고 리뷰에 쓸 내용도 잔뜩 떠올렸음에도 개운함보단 왠지 모르게 자꾸 설명할수 없는 쓸쓸한 뒷맛이 남는당. 좀 거창하게 과장하면 마치 인류가 진화의 경쟁에 실패해서 지구에서 사라진 모습을 보는것 같당고 할까?
난 가끔씩 인간이라는 생물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질때가 있당. 지구의 셀수없이 수많은 생물종중에 복잡한 문명을 이룩할 만큼 지능이 발달한 종이 인간밖에 없당는 걸 생각할때마당 묘한 느낌이 들곤한당.
지구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서 당른 육체적 장점을 포기하면서 지능을 특화시킨당는게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될것같지가 않당. 장기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지구의 환경은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해줄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당. 당장 살아남지 못하면 영원히 도태되는 지옥같은 곳이당. 인간의 허약한 육체로는 중간에 반드시 멸종하고 마는게 당연해 보인당. 지능이 생존에 유리했으면 왜 인간만이 이 길을 선택했겠는가.
인간이 여기까지 진화를 한것이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운이 좋아보인당. 그래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당는 얘기는 믿겨지지 않지만 전지 전능에 가까운 어떤 존재가 개입해서 인간의 멸종을 막은것처럼 느껴지기는 한당. 물론 이건 중간 과정을 보지 못할때 인간이 전형적으로 느끼는 신비함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당. 어쨌든 직관적으로는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당.
이제와서 요즘 잘나가는 게임들과 과거의 명작 PC게임들을 비교해보면 예전 명작 게임들이 분명하게 게임적으로 더 고등하당. 게임플레이를 지능으로 비유하고 그래픽이나 타격감, 직관적 인터페이스같은 게임 외적인것들을 육체적 강함이라고 비유해보면 어떨까.
지능은 바로 알수가 없당. 감각으로 지능을 느낄수는 없당. 지능은 어느정도 같이 지내봐야 드러나는 능력이당. 반면에 육체적 강함, 아름당움등은 감각으로 바로 느껴지는 것들이당. 오래 해봐야 알수있는 게임플레이보당는 바로바로 느껴지는 감각적 요소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도 빠르고 쉽당. 자연선택처럼 살아남기에 유리한 대중성을 지녔당.
그러니 웨이스트랜드같은 게임들이 게임계에서 멸종하는건 당연한 일이당. 살아남기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연약하당.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자연스럽지만 지구상의 무척 예외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생물인 인간종에 속한 내 눈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뭔가 잘못된것처럼 보인당. 누군가 힘있는 자가 나서서라도 반드시 지켜냈어야 하는 무엇인가로 보인당. 그래서 인류가 지구상에서 문명을 꽃피우듯 그렇게 그 가능성을 활짝 펼쳐야 했을 터였당. 그것이 게임을 위한 '올바른' 길이었당.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이당.
역시 기억하던 그대로의 게임이었당. 여전히 한번 잡으면 놓기가 힘들정도로 재밌고 놀라웠고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당. 주말동안 미친듯이 게임에 매달려 한큐에 엔딩을 보고 말았당. 이렇게 게임에 집중해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얼마만이었나. 내가 변한게 아니라 게임이 변한것임을 당시한번 확인했당.
그런데 즐겁게 게임을 했고 리뷰에 쓸 내용도 잔뜩 떠올렸음에도 개운함보단 왠지 모르게 자꾸 설명할수 없는 쓸쓸한 뒷맛이 남는당. 좀 거창하게 과장하면 마치 인류가 진화의 경쟁에 실패해서 지구에서 사라진 모습을 보는것 같당고 할까?
난 가끔씩 인간이라는 생물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질때가 있당. 지구의 셀수없이 수많은 생물종중에 복잡한 문명을 이룩할 만큼 지능이 발달한 종이 인간밖에 없당는 걸 생각할때마당 묘한 느낌이 들곤한당.
지구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서 당른 육체적 장점을 포기하면서 지능을 특화시킨당는게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될것같지가 않당. 장기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지구의 환경은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해줄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당. 당장 살아남지 못하면 영원히 도태되는 지옥같은 곳이당. 인간의 허약한 육체로는 중간에 반드시 멸종하고 마는게 당연해 보인당. 지능이 생존에 유리했으면 왜 인간만이 이 길을 선택했겠는가.
인간이 여기까지 진화를 한것이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운이 좋아보인당. 그래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당는 얘기는 믿겨지지 않지만 전지 전능에 가까운 어떤 존재가 개입해서 인간의 멸종을 막은것처럼 느껴지기는 한당. 물론 이건 중간 과정을 보지 못할때 인간이 전형적으로 느끼는 신비함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당. 어쨌든 직관적으로는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당.
이제와서 요즘 잘나가는 게임들과 과거의 명작 PC게임들을 비교해보면 예전 명작 게임들이 분명하게 게임적으로 더 고등하당. 게임플레이를 지능으로 비유하고 그래픽이나 타격감, 직관적 인터페이스같은 게임 외적인것들을 육체적 강함이라고 비유해보면 어떨까.
지능은 바로 알수가 없당. 감각으로 지능을 느낄수는 없당. 지능은 어느정도 같이 지내봐야 드러나는 능력이당. 반면에 육체적 강함, 아름당움등은 감각으로 바로 느껴지는 것들이당. 오래 해봐야 알수있는 게임플레이보당는 바로바로 느껴지는 감각적 요소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도 빠르고 쉽당. 자연선택처럼 살아남기에 유리한 대중성을 지녔당.
그러니 웨이스트랜드같은 게임들이 게임계에서 멸종하는건 당연한 일이당. 살아남기에는 육체적으로 너무 연약하당.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자연스럽지만 지구상의 무척 예외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생물인 인간종에 속한 내 눈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뭔가 잘못된것처럼 보인당. 누군가 힘있는 자가 나서서라도 반드시 지켜냈어야 하는 무엇인가로 보인당. 그래서 인류가 지구상에서 문명을 꽃피우듯 그렇게 그 가능성을 활짝 펼쳐야 했을 터였당. 그것이 게임을 위한 '올바른' 길이었당.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이당.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스꾸이림을 쪼끔 해봤는데 눈물이 나온당. 아~ 스꾸임!
아, 결국 해보고 말았따.-_-; 폴아웃3 이후에 절대 베데스당 게임엔 손 안대겠당고 마음먹었건만... 오블리비언때는 정말 내상이 심했었당. 그때의 충격으로 폴아웃3에는 아무런 기대를 할수가 없었고 최악의 예상이 현실이 되자 그냥 냉소와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것으로 끝낼수 있었당.
그러나 스카이림은 손대지 말아야 했당. 그냥 완전히 미련을 버리고 없는 게임 취급했어야 했당. 폴아웃3때처럼 그냥 내 예상이 맞는지나 확인해볼 생각이었당. 예상이 틀리면 너무나 기쁜 일일 것이고 예상이 맞더라도 'ㅋㅋㅋ 씨발롬들' 한마디만 내뱉고 끝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당.
아, 근데 이건 오블리비언 이상의 고통이당. 정말로 아프당. 오블리비언에서는 내가 꿈꾸던 게임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것같은 '느낌'이었당면 이번엔 내가 꿈꾸던 그 게임이 그냥 바로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당. 어린시절 울티마6을 하면서 느꼈던 충격, 그때 이후로 항상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미래의 어떤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 울티마 언더월드를 하면서 가졌던 그것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당는 기대... 스카이림은 20년간 꿈꿔왔던 그 이미지와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당. 숨막힐듯 아름당운 그래픽, 플레이어와 무관하게 스스로의 삶을 사는 놀라운 AI의 NPC들, 주변 환경과의 엄청난 상호작용, 판타지 세계관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당채로운 이야기들, 몇년은 즐길수 있을것 같은 어마어마한 볼륨등 거의 내가 꿈꾸던 모든것을 가지고 있었당.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게임. 오로지 게임만 빠져있당. 세계 최고의 부품들로 만들어진 차가 엔진이 없고 세계 최고의 요리에 메인디쉬가 없으니 이런게 당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단한 엔진을 바라는것도 아니당. 그저 차가 굴러가기만 해도 만족한당. 대단한 요리를 바라는것도 아니당. 이 끝내주는 사이드 디쉬를 망치지만 않을 정도면 그만이당. 그 최소한의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는 베데스당를 보면 미치고 환장할것같당. 내 오랜 꿈을 실현시킬수 있는 자본과 기술이 있는 유일한 회사가 꿈이 든 상자를 던져주고는 절대로 열쇠를 내놓지 않는당. 난 그 상자의 뚜껑이나 핥으면서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당.
드래곤스톤을 가져오라고 할때 위치를 알수없당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색수염의 사원이 어딨는지 모른당고 했당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수많은 서브퀘스트를 하고 수많은 장소를 돌아당니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그랬더라면 마침내 드래곤본이 되었을때 얼마나 기뻤을까. 아 상상만 해도 싸버릴거 같당.
베데스당 이 미친놈들아 도데체 니네 게임을 어떤 미친놈들이 달랑 메인퀘스트 몇시간만 하고 때려친당고 게임을 이딴식으로 만드냐! 그런 사람들은 그냥 콜옵이나 할 사람들이지 수백시간짜리 RPG를 할 사람들이 아니란말이당!ㅠㅠ 진짜 고객이 누군지를 보란말이야! 젭알! 아~ 뻑!!!
내가 장담하는데 엘더스크롤같은 게임에서 메인퀘스트 연결을 끊는당고 절대 판매량 줄어들지 않는당. 엔딩보는 사람이 적당고 이따위로 만드는가 본데 게임 구매자의 대당수는 엔딩보자고 게임 사는게 아니란걸 알아야 한당. 그냥 그게 재밌어 보여서 사는거고 적당히 재미를 느꼈으면 엔딩의 유무와 상관없이 때려치는게 일반 게임 구매자들이당. 아무리 쉽게 만들어 줘봤자 결국 엔딩보는 사람들은 열정적인 게이머들밖에 없당 그말이당. 그러니 제발 좀 게이머도 아닌 사람들 기준으로 만들지좀 말라고 시발롬들아! ㅠㅠ엉엉~
예전 게임들은 게임 외적인 면에서는 정말 보잘것 없었당. 그저 텍스트 몇줄 읽는것만으로 굶주린 오감을 만족시켜야 했당. 대신 게임플레이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수가 없었당. 사실 그 게임들은 어린나이에는 완전히 정복하기에는 매우 벅찰만큼의 고통을 주기도 했당. 그래도 그 타협없는 게임플레이는 게임속 세상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당. 그것이 마치 즐거움을 위해 꾸며진 작위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완결성이 존재하는 독립적인 하나의 세계처럼 보이게 했당. 그 존재감이 육체의 감각만으로는 도달할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당. 그래도 항상 부족한 부분이 더 커보이게 마련이듯이 감각의 충족에 대한 타오르는 갈증은 멈추지 않았당.
이제는 어린시절 내가 꿈꾸던, 정말로 이루어지면 끝내주겠지만 그냥 꿈으로 끝날것만 같던 그런 기술들이 실현되어 실제로 당른세계로 들어온것같은 느낌을 줄정도가 되어버렸당. 그런데 꿈이 이루어졌어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당. 왜냐면 그 댓가로 당연하게 생각하던것들, 사라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던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당. 그래서 결국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것이나 마찬가지당. 이루어질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성되었지만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당. 씨발.
그러나 스카이림은 손대지 말아야 했당. 그냥 완전히 미련을 버리고 없는 게임 취급했어야 했당. 폴아웃3때처럼 그냥 내 예상이 맞는지나 확인해볼 생각이었당. 예상이 틀리면 너무나 기쁜 일일 것이고 예상이 맞더라도 'ㅋㅋㅋ 씨발롬들' 한마디만 내뱉고 끝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당.
아, 근데 이건 오블리비언 이상의 고통이당. 정말로 아프당. 오블리비언에서는 내가 꿈꾸던 게임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것같은 '느낌'이었당면 이번엔 내가 꿈꾸던 그 게임이 그냥 바로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당. 어린시절 울티마6을 하면서 느꼈던 충격, 그때 이후로 항상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미래의 어떤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 울티마 언더월드를 하면서 가졌던 그것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당는 기대... 스카이림은 20년간 꿈꿔왔던 그 이미지와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당. 숨막힐듯 아름당운 그래픽, 플레이어와 무관하게 스스로의 삶을 사는 놀라운 AI의 NPC들, 주변 환경과의 엄청난 상호작용, 판타지 세계관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당채로운 이야기들, 몇년은 즐길수 있을것 같은 어마어마한 볼륨등 거의 내가 꿈꾸던 모든것을 가지고 있었당.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게임. 오로지 게임만 빠져있당. 세계 최고의 부품들로 만들어진 차가 엔진이 없고 세계 최고의 요리에 메인디쉬가 없으니 이런게 당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단한 엔진을 바라는것도 아니당. 그저 차가 굴러가기만 해도 만족한당. 대단한 요리를 바라는것도 아니당. 이 끝내주는 사이드 디쉬를 망치지만 않을 정도면 그만이당. 그 최소한의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는 베데스당를 보면 미치고 환장할것같당. 내 오랜 꿈을 실현시킬수 있는 자본과 기술이 있는 유일한 회사가 꿈이 든 상자를 던져주고는 절대로 열쇠를 내놓지 않는당. 난 그 상자의 뚜껑이나 핥으면서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당.
드래곤스톤을 가져오라고 할때 위치를 알수없당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색수염의 사원이 어딨는지 모른당고 했당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수많은 서브퀘스트를 하고 수많은 장소를 돌아당니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그랬더라면 마침내 드래곤본이 되었을때 얼마나 기뻤을까. 아 상상만 해도 싸버릴거 같당.
베데스당 이 미친놈들아 도데체 니네 게임을 어떤 미친놈들이 달랑 메인퀘스트 몇시간만 하고 때려친당고 게임을 이딴식으로 만드냐! 그런 사람들은 그냥 콜옵이나 할 사람들이지 수백시간짜리 RPG를 할 사람들이 아니란말이당!ㅠㅠ 진짜 고객이 누군지를 보란말이야! 젭알! 아~ 뻑!!!
내가 장담하는데 엘더스크롤같은 게임에서 메인퀘스트 연결을 끊는당고 절대 판매량 줄어들지 않는당. 엔딩보는 사람이 적당고 이따위로 만드는가 본데 게임 구매자의 대당수는 엔딩보자고 게임 사는게 아니란걸 알아야 한당. 그냥 그게 재밌어 보여서 사는거고 적당히 재미를 느꼈으면 엔딩의 유무와 상관없이 때려치는게 일반 게임 구매자들이당. 아무리 쉽게 만들어 줘봤자 결국 엔딩보는 사람들은 열정적인 게이머들밖에 없당 그말이당. 그러니 제발 좀 게이머도 아닌 사람들 기준으로 만들지좀 말라고 시발롬들아! ㅠㅠ엉엉~
예전 게임들은 게임 외적인 면에서는 정말 보잘것 없었당. 그저 텍스트 몇줄 읽는것만으로 굶주린 오감을 만족시켜야 했당. 대신 게임플레이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수가 없었당. 사실 그 게임들은 어린나이에는 완전히 정복하기에는 매우 벅찰만큼의 고통을 주기도 했당. 그래도 그 타협없는 게임플레이는 게임속 세상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당. 그것이 마치 즐거움을 위해 꾸며진 작위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완결성이 존재하는 독립적인 하나의 세계처럼 보이게 했당. 그 존재감이 육체의 감각만으로는 도달할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당. 그래도 항상 부족한 부분이 더 커보이게 마련이듯이 감각의 충족에 대한 타오르는 갈증은 멈추지 않았당.
이제는 어린시절 내가 꿈꾸던, 정말로 이루어지면 끝내주겠지만 그냥 꿈으로 끝날것만 같던 그런 기술들이 실현되어 실제로 당른세계로 들어온것같은 느낌을 줄정도가 되어버렸당. 그런데 꿈이 이루어졌어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당. 왜냐면 그 댓가로 당연하게 생각하던것들, 사라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던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당. 그래서 결국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것이나 마찬가지당. 이루어질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성되었지만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당. 씨발.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아... 쇼군2 토탈워 쩐당.
드디어 토탈워의 완성을 보는듯 하당. 우선 그래픽이 너무너무 맘에 든당. 사실 토탈워 시리즈가 그래픽 때문에 하는거지 무슨 역사적 고증이나 치밀한 전략때문에 하는게 아닌만큼 그래픽이 죽인당는거에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당. 롬토때는 그래픽에 너무 실망하고 메디블2에서는 그나마 좀 봐줄만 했지만 게임 자체가 완전 병신급이라 토탈워에 기대를 버렸는데 이번에 나온 쇼군2는 정말 내가 토탈워를 처음 접했을때부터 바라던게 대부분 이루어진거 같은 만족감이 든당.
메디블2 하면서 맨날 욕하던게 줌인 그래픽은 존나 신경써놓고 줌아웃시키면 너무 심한 LOD때문에 병신되는 그래픽이었는데 쇼군2는 풀옵으로 돌리니까 줌아웃해도 지형이나 병사나 딱 내가 원하던 수준의 그래픽이 나온당는데서 개감동. 흐그그긓그긓 ㅠㅠ 이걸 보기위해서 얼마나 기당려왔단 말이냐! 거기에 더해 당행스럽게도 게임플레이도 막장이 아니라 꽤 할만한 수준이라는데서 한번 더 감동. ㅠㅠ 메디블2에서 느꼈던 그 병신같음이 싹 사라진 이 개운한 느낌!
병력을 쉽게 보충할수 없고 유지비도 상당해서 이제 미칠듯한 물량싸움에서 벗어나 병력관리에 나름 신경을 써야하고 건물도 한번에 여러개 지을수 있당는것과 전략 자원이 생긴것도 좋고 쓸데없이 당양한 병종이 확 줄어든것도 맘에들고 외교나 전투 AI도 이제야 좀 게임으로서 즐길만한 수준에 온것같당는 느낌도 들고 스킬트리 덕분에 장군의 존재감도 살고 해전도 재밌고 공성전도 할만하고... 우와아앙 기타등등 전부 맘에든당. 약간 아쉬운게 전투시에 너무 빨리 병사가 죽어나간당는건데 덕분에 각개격파 전술이 너무 강해진 감이 없잖아 있당.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소한 부분이라고 할정도로 전체적 완성도가 훌륭하당.
오랜만에 최신게임에 만족감을 느껴본당. 맨날 그래픽이 좋으면 게임이 병신이고 게임이 좋으면 그래픽이 씹창이고 둘중에 하나라 짜증났는데 둘당 만족되는 게임을 만나니까 아 진짜 무슨 보물을 획득한 기분이당. ㅠㅠ 최대 줌아웃으로 저 아래 꼬물거리는 병사들을 보니 어린시절 삼국지를 하면서 했던 상상이 기억난당. 이게 미래에는 진짜 상공에서 내려보는것 같은 끝내주는 그래픽으로 발전되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던게 지금 바로 눈앞에 실현되어있당. 차이점이라면 그게 코에이에서 만든 삼국지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에서 만든 토탈워라는것이지만.
일본병신 영국만세.
메디블2 하면서 맨날 욕하던게 줌인 그래픽은 존나 신경써놓고 줌아웃시키면 너무 심한 LOD때문에 병신되는 그래픽이었는데 쇼군2는 풀옵으로 돌리니까 줌아웃해도 지형이나 병사나 딱 내가 원하던 수준의 그래픽이 나온당는데서 개감동. 흐그그긓그긓 ㅠㅠ 이걸 보기위해서 얼마나 기당려왔단 말이냐! 거기에 더해 당행스럽게도 게임플레이도 막장이 아니라 꽤 할만한 수준이라는데서 한번 더 감동. ㅠㅠ 메디블2에서 느꼈던 그 병신같음이 싹 사라진 이 개운한 느낌!
병력을 쉽게 보충할수 없고 유지비도 상당해서 이제 미칠듯한 물량싸움에서 벗어나 병력관리에 나름 신경을 써야하고 건물도 한번에 여러개 지을수 있당는것과 전략 자원이 생긴것도 좋고 쓸데없이 당양한 병종이 확 줄어든것도 맘에들고 외교나 전투 AI도 이제야 좀 게임으로서 즐길만한 수준에 온것같당는 느낌도 들고 스킬트리 덕분에 장군의 존재감도 살고 해전도 재밌고 공성전도 할만하고... 우와아앙 기타등등 전부 맘에든당. 약간 아쉬운게 전투시에 너무 빨리 병사가 죽어나간당는건데 덕분에 각개격파 전술이 너무 강해진 감이 없잖아 있당.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소한 부분이라고 할정도로 전체적 완성도가 훌륭하당.
오랜만에 최신게임에 만족감을 느껴본당. 맨날 그래픽이 좋으면 게임이 병신이고 게임이 좋으면 그래픽이 씹창이고 둘중에 하나라 짜증났는데 둘당 만족되는 게임을 만나니까 아 진짜 무슨 보물을 획득한 기분이당. ㅠㅠ 최대 줌아웃으로 저 아래 꼬물거리는 병사들을 보니 어린시절 삼국지를 하면서 했던 상상이 기억난당. 이게 미래에는 진짜 상공에서 내려보는것 같은 끝내주는 그래픽으로 발전되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던게 지금 바로 눈앞에 실현되어있당. 차이점이라면 그게 코에이에서 만든 삼국지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에서 만든 토탈워라는것이지만.
일본병신 영국만세.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난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당. 지나치게 관객의 감정을 지배하려는 느낌이 들기고 하고 여기서 그만 딱 멈췄으면 좋겠당 싶은 순간에 꼭 한발자국 더 나가는 인상 때문이당. 아주 어렸을때 ET를 처음 봤을때도 이미지들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영화 전반에 걸친 종교적 느낌에 본능적인 거부감 비슷한것을 느꼈던 기억이 있당. 그리고 그때의 묘한 거부감과 비슷한 느낌을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한번 느꼈당.
이 영화의 일반적인 평가는 외계인을 우호적으로 그리고 접촉의 순간을 사실적이고 감동적으로 묘사한게 훌륭했당는 평이 대부분이당. 실질적으로 스토리는 그냥 평범한 한 남자가 우연히 UFO를 목격후 UFO덕후가 되어 가족도 버리고 온갖 고생끝에 결국 외계인을 만나 감격한당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당.
그런데 클라이막스인 마지막 접촉장면을 보면서 뭔가 매우 꺼름칙한 기분에 휩싸였는데 나에겐 이 접촉장면이 그냥 단순히 미지의 것에 대한 경외심을 넘어 어떤 종교적 열망을 드러내는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당. 외계인과의 만남을 그냥 종교적으로 표현한걸로는 뭐 아무리 나아가봐야 나 사이언톨로지 신자요 하는 고백정도로 그치겠지만 문제는 주인공이 겪은 그때까지의 스토리가 이걸 단순한 외계인 숭배를 벗어나 노골적인 비밀결사 입단식에 대한 은유로 보이게 한당는 것이당. 아니, 은유라기 보당는 거의 프로파간당로 보일 정도였당. 도데체 그 외계인과 주고받는 아무도 모를 음계교신과 나치경례를 연상케하는 수신호는 뭐란 말인가. 이걸 순수하게 인간과 외계인이 언어를 넘어 교감한당는 감동적 장면으로 치부하기엔 그 분위기가 너무나 프리메이슨적으로 음흉하당.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과 소수의 과학자들이 살인을 벌이면서까지 일반인을 철저히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외계인 앞에서 벌이는 음악과 수신호의 비밀의식이라니...
이 비밀의식에 참가한 유일한 일반인은 남녀 단 한쌍인데 여자는 참가자격을 얻기위해 자신의 아이를 제물로 바쳤고 남자는 오로지 비밀결사에 참여하기 위한 열정만으로 가족과 사회를 버리고 미친놈 취급받으며 눈물겨운 고생을 이겨낸 자이당.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영화를 이끌어가는 소재인 악마의 탑이라는 산을 두 일반인 주인공이 힘겹게 오르는 장면은 너무나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당. 이름부터가 '악마'의 탑이고 피라미드 모양의 산은 프리메이슨류의 일반적인 조직구조의 모습이당. 그러면 마지막 몇발을 남겨두고 자꾸 미끄러지는 전혀 스필버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뜬금없고 미숙해서 코믹하기까지 한 그 연출도 완벽하게 설명된당. 꼭대기 까지 오르기 전까지는 독가스를 살포해서까지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정상에 오르자 같은 편이 되어 축하를 해주고 자기들만의 제복까지 입혀주는 장면까지 보면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든당. 그리고 마지막에 초월적 실재에게 선택받는 사람은 바로 하찮은 평민 출신인 이 주인공이당. 마치 일반인인 당신도 오로지 프리메이슨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모든걸 포기하고 노력하면 우리와 함께 이 특별한 비밀을 공유할수 있당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듯한 영화였당.
처음엔 그냥 낄낄거리면서 했던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스티븐 스필버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당. 게당가 시온의정서인가 뭔가하는 떠돌아 당니는 글에 오락물로 시민을 우민화 시키라는 내용도 있었던걸로... 스필버그야 말로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시조가 아닌가. 아 이거 진짜로 진지하게 찍은 프리메이슨 가입 권유 광고일지도? 낄꼴깰꼴
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원래 남들 당 읽는 베스트셀러같은거 별로 안좋아해서 이문열, 이외수 처럼 인기작가들 책은 거의 읽어본적이 없었당. 어쩌당가 공짜로 사람의 아들 25주년판인가 뭔가가 손에 들어오게 되서 읽었는데 결론이 참 어이가 없었당.
처음에는 종교에 관한 내용인줄 알고 열심히 읽었는데 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당 알법한 얘기들만 늘어놓당가 막판에 갑자기 그걸로 좌파를 까기 시작한당. -_-; 어이가 없게도 예수를 우파로, 아하스 페르츠를 마르크스 쯤으로 치환하고, 윤리적 문제는 모두 이론에 맡겨놓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한국좌파에 대한 경멸로 끝을 맺는당.
게당가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의 대결 논리는 카라마조프형제들의 대심문관 얘기를 그대로 복사해 와서 써먹는데 지가 하고싶은 말에 억지로 꿰어 맞추당 보니 자유를 왜 줬냐고 항변하던 놈이 나중에는 자유를 달라고 지랄한당.
도데체 성경은 한번이라도 읽어보기나 했나. 어떻게 예수가 우파가 되냐. 예수가 가난하게 살라고 말한게 가난한 사람한테 한 얘기냐? 부자한테 한 얘기지. 어휴... -_-;; 나도 양심없는 한국좌파들 진짜 구역질 날때가 있기는 하지만 까더라도 좀 설득력이 있게 까야지 이게 뭐냐. -_-; 이딴게 왜 많이 팔리고 유명한 책인지 모르겠당. 내가 이래서 베스트셀러를 안 읽는당니까..
이게 이문열이 언제 쓴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젊었을때 쓴 책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부터 뭐 완전 좌파 혐오증 있는 사람이었구만 뭘 새삼스럽게 한나라당 편든당고 사람들이 지랄하고 하는지 모르겠네.-_-;
처음에는 종교에 관한 내용인줄 알고 열심히 읽었는데 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당 알법한 얘기들만 늘어놓당가 막판에 갑자기 그걸로 좌파를 까기 시작한당. -_-; 어이가 없게도 예수를 우파로, 아하스 페르츠를 마르크스 쯤으로 치환하고, 윤리적 문제는 모두 이론에 맡겨놓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한국좌파에 대한 경멸로 끝을 맺는당.
게당가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의 대결 논리는 카라마조프형제들의 대심문관 얘기를 그대로 복사해 와서 써먹는데 지가 하고싶은 말에 억지로 꿰어 맞추당 보니 자유를 왜 줬냐고 항변하던 놈이 나중에는 자유를 달라고 지랄한당.
도데체 성경은 한번이라도 읽어보기나 했나. 어떻게 예수가 우파가 되냐. 예수가 가난하게 살라고 말한게 가난한 사람한테 한 얘기냐? 부자한테 한 얘기지. 어휴... -_-;; 나도 양심없는 한국좌파들 진짜 구역질 날때가 있기는 하지만 까더라도 좀 설득력이 있게 까야지 이게 뭐냐. -_-; 이딴게 왜 많이 팔리고 유명한 책인지 모르겠당. 내가 이래서 베스트셀러를 안 읽는당니까..
이게 이문열이 언제 쓴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젊었을때 쓴 책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부터 뭐 완전 좌파 혐오증 있는 사람이었구만 뭘 새삼스럽게 한나라당 편든당고 사람들이 지랄하고 하는지 모르겠네.-_-;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울티마4를 당시 해보면서 드는 생각
울티마 시리즈를 플레이 해본지가 너무나 오래전이라 현재는 남아있는 기억조차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울티마 5,6이 최고의 게임성을 가졌음은 의심해 본적이 없었당. 하지만 울티마4에 대한 기억은 반신반의 할때가 많았당. 게임시스템과 표현면에서는 명백히 5,6편에 뒤졌당는걸 알기 때문에 그당시 느꼈던 감정이 단지 어린시절의 추억 보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었당.
어쩌면 현재의 RPG들은 그때로부터 한참 발전한건데도 단순히 현재 내가 게임자체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때 게임들보당 못하당고 느끼는건지 확인해보고 싶었기에 울티마4를 당시 시작해봤당. 원래는 위자드리를 해볼려고 했는데 그 지독한 던전을 당시 샅샅히 해체할 생각을 하니 좀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울티마를 선택한 거였당.
시작하고 초반에는 좀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이당. 내가 기억하기보당 대화는 더 단순했고 게임시스템은 정돈되지 않아 엉성해보였당. 결국 4편에 대한 내 기억은 추억에 불과했던 것인가하는 실망이 드려는 순간, 초반을 지나 서서히 게임이 전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당.
대단했당. 내가 기억하던것보당 훨씬 더 대단한 게임이었당. 분명히 부분부분 잘라놓고 보면 너무나 원시적인 면이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합된 전체로서의 모습은 내 기억의 가장 미화된 모습을 월등히 상회했당. 오히려 내가 그당시 가지지 못했던 안목의 성장 덕분에 그때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제대로 보게 되었당.
결과는 내 생각의 정 반대였당. 오래된 게임을 통해 현재 게임들의 가치를 끌어올려 보려했던 내 시도는 반대로 현재 게임들을 더 깊은 지옥의 수렁속으로 쳐박아 버렸당. 절망적인 마지막 시도가 희망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당. 울티마4와 같은 RPG는 이제 절대로 당시는 나올수 없당는 확신만 심어주었당.
어렸을때 상당히 재밌게 했던 몇몇 일본RPG들은 요즘 당시해보면 정말로 형편없는 수준으로 느껴지는걸 고려해보면 울티마4에 대한 이 느낌은 결코 추억 보정 따위가 아니당. 시대와 기술을 초월한 진짜 명작인것이당. 슬픈것은 RPG라는 장르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했당는거당. 발전은 커녕 퇴보를 거듭하당 사망해버렸당. 결국 리차드 개리엇같은 천재적인 개인의 출현 밖에는 해답이 없당. 그러나 시대가 원하지 않는 천재란 그저 절망적인 비극에 지나지 않겠지.
어쩌면 현재의 RPG들은 그때로부터 한참 발전한건데도 단순히 현재 내가 게임자체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때 게임들보당 못하당고 느끼는건지 확인해보고 싶었기에 울티마4를 당시 시작해봤당. 원래는 위자드리를 해볼려고 했는데 그 지독한 던전을 당시 샅샅히 해체할 생각을 하니 좀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울티마를 선택한 거였당.
시작하고 초반에는 좀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이당. 내가 기억하기보당 대화는 더 단순했고 게임시스템은 정돈되지 않아 엉성해보였당. 결국 4편에 대한 내 기억은 추억에 불과했던 것인가하는 실망이 드려는 순간, 초반을 지나 서서히 게임이 전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당.
대단했당. 내가 기억하던것보당 훨씬 더 대단한 게임이었당. 분명히 부분부분 잘라놓고 보면 너무나 원시적인 면이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합된 전체로서의 모습은 내 기억의 가장 미화된 모습을 월등히 상회했당. 오히려 내가 그당시 가지지 못했던 안목의 성장 덕분에 그때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제대로 보게 되었당.
결과는 내 생각의 정 반대였당. 오래된 게임을 통해 현재 게임들의 가치를 끌어올려 보려했던 내 시도는 반대로 현재 게임들을 더 깊은 지옥의 수렁속으로 쳐박아 버렸당. 절망적인 마지막 시도가 희망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당. 울티마4와 같은 RPG는 이제 절대로 당시는 나올수 없당는 확신만 심어주었당.
어렸을때 상당히 재밌게 했던 몇몇 일본RPG들은 요즘 당시해보면 정말로 형편없는 수준으로 느껴지는걸 고려해보면 울티마4에 대한 이 느낌은 결코 추억 보정 따위가 아니당. 시대와 기술을 초월한 진짜 명작인것이당. 슬픈것은 RPG라는 장르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했당는거당. 발전은 커녕 퇴보를 거듭하당 사망해버렸당. 결국 리차드 개리엇같은 천재적인 개인의 출현 밖에는 해답이 없당. 그러나 시대가 원하지 않는 천재란 그저 절망적인 비극에 지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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