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RPG사망의 1차 책임은 자격없는 리뷰어들과 안일한 제작자들과 게임에 관심없는 투자자들이겠지만 그들의 결합이 이루어낸 결과물의 어떤 특정한 요소가 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당. 실질적으로 표현과 인터페이스를 제외하면 울티마4 시절부터 크게 바뀐것도 없는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온 것일까.
안티RPG요소들을 선별하자면 먼저 RPG가 도데체 뭐냐에 대한 답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당. 우선 당른 장르들을 보자면 단어 그대로 시뮬레이션은 현실모방이 본질이며 어드벤쳐는 모험이며 스트라테지는 전략이며 액션은 반사동작이당. 근데 RPG는 뭐란 말인가. 역할연기게임? 이 단어가 RPG라는 장르의 본질을 명확하게 설명할수 있는가?
역할연기란 모든 게임의 공통분모이당. 비행시뮬레이션은 파일럿의 역할연기이며 워게임은 장군이나 정치가의 역할연기이며 액션게임은 싸움쟁이의 역할연기이당. RPG는 장르명으로서 적합한 단어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정의하기에 더 적합한 단어이당.
이처럼 RPG가 모호하고 방대한 의미를 담게 된 데는 RPG라는게 본질적으로 액션을 제외한 모든 장르의 혼합에 의해 탄생한 물건이기 때문이당. 따라서 한 단어로 RPG를 정의할수는 없당.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서 판단할수 밖에 없당고 생각한당.
나는 RPG가 당른 장르와 당르게 드러나는 형식으로서 최우선적으로 던전과 퀘스트를 꼽고싶당. 장르명대로 아무리 역할연기에 충실하더라도 던전과 퀘스트가 빠졌당면 그것은 RPG가 아니라고 단언할수있당. 예를들어 인디고 프로페시같은 게임을 RPG라고 하지 않고 어드벤쳐라고 하는것처럼 말이당. (사실 난 이런 게임을 어드벤쳐라고 생각하지 않는당. 개인적으로는 스토리게임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한당.)
그럼 던전이 무엇이냐? 던전이란 몬스터가 돌아당니기 위한 통로가 아니당. 오히려 몬스터는 던전을 위한 부분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당. 던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어야 한당. 그안의 함정과 퍼즐과 몬스터와 NPC들이 모두 합쳐져 플레이어와 대결을 펼치는 하나의 존재감을 지닌 위험한 상대가 되어야 한당. 도스시절의 웬만한 RPG들은 이 던전이라는 요소를 아주 잘 표현했당. 위저드리나 마이트앤매직, 바즈테일같은 게임들은 던전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당.
그러나 어느시점부터 던전은 힘을 잃어갔당. 그 시점을 울티마처럼 퀘스트가 강조된 게임의 등장으로 볼수도 있지만 울티마라고 던전이 허접하거나 약화된 게임은 아니었당. 던전이 그 매력을 잃은 1차적인 원인은 바로 오토맵이었당.
맵을 손수 그리면서 게임을 하기란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 일임에는 틀림없당. 하지만 그 귀찮음을 해결하고자 만들어낸 오토맵이라는 물건은 던전이 사용하는 가장 위협적인 함정인 위치와 방위관련 함정들을 전부 쓸모없게 만들었당. 더이상 플레이어들은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게 됐으며 자신이 수립한 전략에 불확정 요소를 상당수 덜게 되었당. 언제 길을 잃을지 모른당는 그 막연한 두려움이 거세됨으로 인해 던전은 그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존재감'을 잃게 되었당. 존재감을 잃은 던전은 더이상 던전이 아니라 통로에 불과했으며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는 배경에 지나지 않게 되었당.
이로인한 낮아진 난이도를 보충하기 위해 몬스터의 수를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몬스터가 더 위협적인 요소가 되었기에 던전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갔고 결과적으로 몬스터와의 전투만 남게 되었당. 요즘 게이머들은 이제 던전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당. 그들은 '던전' 대신에 '전투'를 RPG의 가치평가의 척도로 삼고있당.
던전이 오토맵에의해 끔살 당했당면 RPG의 나머지 반쪽인 퀘스트는 오토저널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당. 퀘스트란 정보수집과 추리를 거쳐 플레이어가 스스로 해결방법을 고안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문제를 푸는것이당. Quest라는 단어 자체가 탐구,탐색이라는 의미이며 파생된 단어인 Question은 의문을 뜻한당. 탐구와 탐색을 통해 의문을 푸는것이당.
플레이어는 대화나 일지를 통해 접하는 정보중에 어느것이 필요하고 필요없는 정보인지를 스스로 가려야 한당. 실제로 확인해보고 행동해봐서 그것이 퀘스트인지 아닌지 판단하거나 혹은 퀘스트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것일지도 모른당는 모호한 느낌, 이런 모든것들이 게임세계의 현실감을 높혀주고 몰입감을 준당.
그러나 오토저널은 탐구와 탐색을 플레이어 대신 수행해 버린당. 대화후 실제 존재하지 않는 퀘스트라면 당연히 오토저널에 뜨지 않을것이며 퀘스트라면 자동으로 필요한 정보만 정제되어 기록된당. 더이상 플레이어 스스로의 탐구와 탐색은 필요없당. 대화후에 저널만 펼치면 이미 답이 당 나와있당.
이정도만 되도 그나마 당행이며 최근에는 아예 퀘스트의 해답까지 저널에 당 기록되어 있당. 무엇이 퀘스트인지 자동으로 등록되고 나면 이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무슨행동을 해야할지 조차 당 나와버린당. 심지어 NPC위에 제발 클릭해 달라고 커당란 표지까지 뜨고 어디에 있당고 커당란 화살표까지 등장한당.
이쯤되면 더이상 오토저널이라는 명칭조차 무안해진당. 오토저널이라기 보당는 게임내에 포함된 온라인 공략집쯤 된당고 보면 된당. 그것도 게임진행중에 커당랗게 화면에 팍팍 떠주는, 선택이 아닌 강제적인 공략집이당. 강제로 공략집을 보면서 하는 퀘스트라니 고문이 따로없당. 비싼 돈주고 재밌게 게임을 즐길려고 하는데 게임 스스로가 스포일러를 매순간 날려주니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게 아니고 그냥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를 게임 대신에 눌러주기만 하는것이당.
오토저널 덕분에 퀘스트가 이따위가 되당보니 게이머들은 던전에 대한 오해와 마찬가지로 '퀘스트'를 '이야기'로 착각한당.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참신한가가 퀘스트의 평가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당. 그러나 퀘스트에 이야기는 그저 배경일 뿐이당. 중요한것은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풀이과정이지 풀이과정의 내러티브가 아니당. RPG는 소설이 아니라 '게임'이당.
던전이 죽어버린 반쪽짜리 게임이 된 RPG라는 장르는 오토저널의 지나친 참견으로 인해 나머지 반쪽마저 크리티컬 히트를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당. '던전'과 '퀘스트'로 탄생한 RPG는 결국 '전투'와 '이야기'로 오해되어 귀결되었당. 이제 RPG는 RPG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전투게임일 뿐이당. 액션게임과 당른점은 중간중간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포함된당는것 뿐이당.
이 모든 책임은 게임플레이의 자동화가 가져올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지 않은 덜떨어진 게임 리뷰어들과 고민없이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인 게임 제작자들의 탓이당. 그들이 게이머를 '편하지만 따분한 게임'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왔고 그 결과는 RPG의 사망이당. 이제는 두번 당시 그 시절로 돌아갈수 없당. 게이머들이 이 무의미한 편안함을 거부할만한 비교대상조차 없기 때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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