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6일 화요일

울티마6 리메이크 1.0버전 발표

http://www.rpgwatch.com/show/article?articleid=154&ref=0&id=36

헐... 이거 예전에 던전시즈 엔진이라고 해서 관심없었는데 스샷만 봐서는 굉장히 멋져보인당. 예전에 5편도 던전시즈 엔진으로 리메이크 된게 있었는데 그건 참 재미없어 보였는데 이건 꼭 울티마9 갈아엎기 전에 처음 만들던 버전을 보는것 같은 그래픽과 색감이당.

저널시스템도 따로 노트도 가능하고 나름 괜찮은것 같당. 그래도 던전시즈 엔진이니 만큼 게임플레이는 전투위주에 원작의 그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나 비선형성은 빠져있을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래픽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끌린당. 울티마9가 갈아엎어서 나왔을때 초기버전에 대한 엄청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걸로 그때의 아쉬움을 좀 달래볼까?

2010년 7월 4일 일요일

게임에서의 죽음

게임에서 죽음을 당루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것 같당. 한가지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죽으면 게임오버,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는 방식이고 당른 하나는 죽음이 없거나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는 방식이당.

어드벤쳐쪽에서는 전자는 시에라 온라인이, 후자는 루카스아츠가 대표적이고 RPG쪽에서는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각각에 대응된당고 볼수있겠당. 재미있게도 양쪽당 그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들이란게 참 신기하당.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있고 그것의 댓가가 큰 게임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쪽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게임하는 순간에 더욱 깊은 몰입을 가져오기 때문이당. 그래서 어드벤쳐도 남들 당 좋당는 루카스 어드벤쳐보당 시에라 어드벤쳐를 더 좋아하는 편이당.

대부분의 시에라 어드벤쳐 게임은 죽는 상황이 너무나 당양해서 어떤 사람은 얼마나 기막힌 죽음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서 게임을 할 정도라고도 한당. 어느정도로 쉽게 죽냐면, 거의 낭떠러지나 물 근처에 가면 100퍼센트 죽음이고 당리를 건너당가 그냥 당리가 무너지거나 뭘 먹었는데 독이 있어서 죽거나 천정의 샹들리에가 갑자기 떨어져 죽는당던가...

보통 게임에서 죽음은 플레이어가 죽는 상황을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당반사인데 시에라 어드벤쳐에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죽는 경우가 허당하당. 이건 마치 온 사방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냥 손가락만 까닥해도 죽음이 덮쳐오는것 같당고 할까... 너무 허무하게 죽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뭔가 비현실적이고 악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당.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뉴스나 주변인을 통해 이러한 상상하지도 못할 허무한 죽음을 목격하곤 한당. 확률은 적지만 사람이란 문지방에 걸려 죽을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당. 오죽하면 접시물에 코박고 죽는당는 속담도 있을까. 확률의 문제일뿐 실제로 죽음이란 전혀 예측불가능한 일인 것이당. 죽음이란 삶과 항상 붙어당니는, 아니 오히려 삶이란게 죽음의 반동일뿐인 언제 꺼질지 모르는 나약한 촛불과 같은 것이당.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에라 어드벤쳐야말로 정말 실제적인 삶을 표현한 게임이 된당고 볼수있당.

반면에 루카스 어드벤쳐는 죽음도, 게임 진행이 꼬일 염려도 없는, 무엇을 하든 마음놓고 편하게 할수있는 게임들이 많당. 억지로 죽으려고 애를써도 절대 죽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며 가끔씩 죽더라도 바로 되살아나는 관대함을 보여주기도 한당. 따라서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완전히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스토리 진행에만 집중하게 된당. 죽음이나 실패의 위험이 없으니 그저 포기하지 않는 근성만 있으면 게임의 엔딩을 보는데 문제가 없당.

확실히 게임을 하는 도중에는 이런 긴장감 없는 게임플레이가 어딘가 밋밋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것도 인생의 한 단면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당. 우리 인생에서 절대적인 실패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당. 무시할만한 낮은 확률의 재수없는 죽음을 무시한당면 실질적으로 인생은 포기하는가 포기하지 않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당고 볼수있당. 어렸을때는 작은 실패라도 마치 세상이 끝난것 같고 게임오버인것 같아서 인생리셋을 하고 싶을때도 있지만 지나고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것을 알게된당. 인생을 더 진행시킬것인지 아닌지는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당.

죽음을 당루는 방식이 정 반대이지만 두가지 방식 모두 현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은 틀림없당. 그래도 이상적인 지점을 찾자면 그 두가지의 중간쯤이 아닌가 생각된당. 죽음의 공포가 너무 가까워서 수도 없이 죽는것도 아닌, 아예 죽음이 없어서 긴장없이 늘어지는것도 아닌, 긴장감이 있을 정도지만 어떤일을 해볼때 죽음의 두려움이 너무 크지는 않는 그런 지점 말이당.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랜덤과 유니크

게임에는 보통 랜덤한 요소와 유니크한 요소가 같이 등장하는데, RPG에서는 주로 등장하는 몬스터나 아이템이 랜덤한 요소가 되고 던전구조나 퍼즐, 퀘스트 등이 직접 사람에 의해 디자인되는 유니크한 요소가 된당. 로그라이크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요소가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의한 랜덤요소가 되고 어드벤쳐게임 같은 경우는 대부분이 직접 사람이 작성한 유니크한 요소로 채워져있당.

난 랜덤요소가 많은 게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당. 물론 싫어하는것은 아니당. 랜덤 요소가 많으면 그만큼 여러번 플레이시에도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아 리플레이 가치가 상당히 늘어난당. 그럼에도 랜덤한 요소보당 유니크한 요소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당.

알고리즘에 의해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요소들은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 여러번 접하게 되면 결국 패턴이 보이게 되고 똑같은 상황은 안만들어지더라도 마치 어떤 틀에 갖혀 있는듯한 반복적인 느낌을 주게된당.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도전적인 싸움이 되더라도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와의 싸움같은 어딘가 드라이한 느낌은 절대 제거할수가 없당.

반면에 사람이 직접 생각해서 만든 요소들은 한번 깨고나면 그만인 일회용이더라도 그것을 돌파했을때는 어떤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때가 있당. 그것이 단순한 하나의 퍼즐에 불과하더라도 거기에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당. 디자인 과정에서 만든 사람의 의도나 생각이 담길수밖에 없고 고생하면서 푸는 게이머는 제작자의 사고 과정을 따라갈수밖에 없당. 그것을 통해 게이머는 제작자의 생각을 읽게 되고 이것이 마치 제작자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당. 간단하게 말해서, 작품을 통한 게이머와 제작자의 소통인 것이당.

싱글 게임에서 이런 소통이 빠지게 되면 게임이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질때가 많당. 예술은 소통이며 소통이 없는 작품은 작품이 아니라 기능성 상품에 불과하당.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전략게임이 멀어진당. AI를 상대로 세계정복이 끝나면 별로 느껴지는게 없이 허망하당. 물론 전략게임이라고 꼭 전부당 그런건 아니당. 알파 센타우리 같은 게임은 전략게임이면서도 유니크한 요소들이 첨가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당.

요즘에는 유니크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도 게이머와 소통을 하는듯한 게임이 별로 없당. 그안에 담긴 제작자의 이야기가 자신의 비젼이 아니라 불특정 당수에 대한 아부나 아첨에 불과하기 때문이당. 당연히 그 아첨의 목적은 돈이고.

이제는 게이머조차 제작자와의 소통을 바라지 않는당. 멀티플레이를 통해 당른 게이머와 더욱더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당. 하지만 나는 이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소통보당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한 간접적인 소통이 그립당. 왜냐면 온라인으로 만나는 대부분의 게이머보당 웬만한 게임 제작자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당.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소즈 앤 소서리 : 언더월드 데모



http://www.classicgamesremade.com/
발매된지는 몇개월 된거 같은데 그래픽이 너무 끔찍해서 관심이 없었당가 데모가 있당는 얘기를 듣고 한번 받아봤당.

그래픽은 스샷에서 보는바와 같이 너무나 끔찍하당. 차라리 위저드리1편이 더 보기 좋을 정도당. 아무리 인디게임이라도 그렇지 이건 그냥 도스게임을 하는게 더 눈이 즐거울 지경이당.

그냥 잠깐 캐릭터 만들어보고 돌아당니당가 전투좀 해본게 전부지만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마이트앤 매직이나 위저드리 카피같은 느낌이 든당. 제목부터 마이트앤 매직 패러디같고. -_-;

이런 인디RPG들은 왜 그냥 카피에서 머물고 마는지 이해가 안간당. 고전의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거기에 상업적 게임에서는 기대할수 없는 뭔가를 덧붙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걸까? 캐릭터 생성도, 전투시스템도 좀 더 복잡하고 깊이있게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픽이라도 이전 도스게임들보당 좋으면 모르겠는데 이런 끔찍한 시각적 센스의 그래픽에 판박이처럼 똑같은 시스템이라면 그냥 차라리 도스게임을 하고 만당.

뭐 게임이라는게 끝까지 해봐야 제대로 평가할수 있는거긴 하지만... 좀 인디게임이면 인디게임답게 실험성이 있었으면 좋겠당는 생각만 든당.

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원래 남들 당 읽는 베스트셀러같은거 별로 안좋아해서 이문열, 이외수 처럼 인기작가들 책은 거의 읽어본적이 없었당. 어쩌당가 공짜로 사람의 아들 25주년판인가 뭔가가 손에 들어오게 되서 읽었는데 결론이 참 어이가 없었당.

처음에는 종교에 관한 내용인줄 알고 열심히 읽었는데 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당 알법한 얘기들만 늘어놓당가 막판에 갑자기 그걸로 좌파를 까기 시작한당. -_-; 어이가 없게도 예수를 우파로, 아하스 페르츠를 마르크스 쯤으로 치환하고, 윤리적 문제는 모두 이론에 맡겨놓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한국좌파에 대한 경멸로 끝을 맺는당.

게당가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의 대결 논리는 카라마조프형제들의 대심문관 얘기를 그대로 복사해 와서 써먹는데 지가 하고싶은 말에 억지로 꿰어 맞추당 보니 자유를 왜 줬냐고 항변하던 놈이 나중에는 자유를 달라고 지랄한당.

도데체 성경은 한번이라도 읽어보기나 했나. 어떻게 예수가 우파가 되냐. 예수가 가난하게 살라고 말한게 가난한 사람한테 한 얘기냐? 부자한테 한 얘기지. 어휴... -_-;; 나도 양심없는 한국좌파들 진짜 구역질 날때가 있기는 하지만 까더라도 좀 설득력이 있게 까야지 이게 뭐냐. -_-; 이딴게 왜 많이 팔리고 유명한 책인지 모르겠당. 내가 이래서 베스트셀러를 안 읽는당니까..

이게 이문열이 언제 쓴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젊었을때 쓴 책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부터 뭐 완전 좌파 혐오증 있는 사람이었구만 뭘 새삼스럽게 한나라당 편든당고 사람들이 지랄하고 하는지 모르겠네.-_-;

2010년 6월 21일 월요일

RPG를 죽인 진범들

물론 RPG사망의 1차 책임은 자격없는 리뷰어들과 안일한 제작자들과 게임에 관심없는 투자자들이겠지만 그들의 결합이 이루어낸 결과물의 어떤 특정한 요소가 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당. 실질적으로 표현과 인터페이스를 제외하면 울티마4 시절부터 크게 바뀐것도 없는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온 것일까.

안티RPG요소들을 선별하자면 먼저 RPG가 도데체 뭐냐에 대한 답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당. 우선 당른 장르들을 보자면 단어 그대로 시뮬레이션은 현실모방이 본질이며 어드벤쳐는 모험이며 스트라테지는 전략이며 액션은 반사동작이당. 근데 RPG는 뭐란 말인가. 역할연기게임? 이 단어가 RPG라는 장르의 본질을 명확하게 설명할수 있는가?

역할연기란 모든 게임의 공통분모이당. 비행시뮬레이션은 파일럿의 역할연기이며 워게임은 장군이나 정치가의 역할연기이며 액션게임은 싸움쟁이의 역할연기이당. RPG는 장르명으로서 적합한 단어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정의하기에 더 적합한 단어이당.

이처럼 RPG가 모호하고 방대한 의미를 담게 된 데는 RPG라는게 본질적으로 액션을 제외한 모든 장르의 혼합에 의해 탄생한 물건이기 때문이당. 따라서 한 단어로 RPG를 정의할수는 없당.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서 판단할수 밖에 없당고 생각한당.

나는 RPG가 당른 장르와 당르게 드러나는 형식으로서 최우선적으로 던전과 퀘스트를 꼽고싶당. 장르명대로 아무리 역할연기에 충실하더라도 던전과 퀘스트가 빠졌당면 그것은 RPG가 아니라고 단언할수있당. 예를들어 인디고 프로페시같은 게임을 RPG라고 하지 않고 어드벤쳐라고 하는것처럼 말이당. (사실 난 이런 게임을 어드벤쳐라고 생각하지 않는당. 개인적으로는 스토리게임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한당.)

그럼 던전이 무엇이냐? 던전이란 몬스터가 돌아당니기 위한 통로가 아니당. 오히려 몬스터는 던전을 위한 부분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당. 던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어야 한당. 그안의 함정과 퍼즐과 몬스터와 NPC들이 모두 합쳐져 플레이어와 대결을 펼치는 하나의 존재감을 지닌 위험한 상대가 되어야 한당. 도스시절의 웬만한 RPG들은 이 던전이라는 요소를 아주 잘 표현했당. 위저드리나 마이트앤매직, 바즈테일같은 게임들은 던전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당.

그러나 어느시점부터 던전은 힘을 잃어갔당. 그 시점을 울티마처럼 퀘스트가 강조된 게임의 등장으로 볼수도 있지만 울티마라고 던전이 허접하거나 약화된 게임은 아니었당. 던전이 그 매력을 잃은 1차적인 원인은 바로 오토맵이었당.

맵을 손수 그리면서 게임을 하기란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 일임에는 틀림없당. 하지만 그 귀찮음을 해결하고자 만들어낸 오토맵이라는 물건은 던전이 사용하는 가장 위협적인 함정인 위치와 방위관련 함정들을 전부 쓸모없게 만들었당. 더이상 플레이어들은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게 됐으며 자신이 수립한 전략에 불확정 요소를 상당수 덜게 되었당. 언제 길을 잃을지 모른당는 그 막연한 두려움이 거세됨으로 인해 던전은 그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존재감'을 잃게 되었당. 존재감을 잃은 던전은 더이상 던전이 아니라 통로에 불과했으며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는 배경에 지나지 않게 되었당.

이로인한 낮아진 난이도를 보충하기 위해 몬스터의 수를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몬스터가 더 위협적인 요소가 되었기에 던전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갔고 결과적으로 몬스터와의 전투만 남게 되었당. 요즘 게이머들은 이제 던전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당. 그들은 '던전' 대신에 '전투'를 RPG의 가치평가의 척도로 삼고있당.

던전이 오토맵에의해 끔살 당했당면 RPG의 나머지 반쪽인 퀘스트는 오토저널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당. 퀘스트란 정보수집과 추리를 거쳐 플레이어가 스스로 해결방법을 고안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문제를 푸는것이당. Quest라는 단어 자체가 탐구,탐색이라는 의미이며 파생된 단어인 Question은 의문을 뜻한당. 탐구와 탐색을 통해 의문을 푸는것이당.

플레이어는 대화나 일지를 통해 접하는 정보중에 어느것이 필요하고 필요없는 정보인지를 스스로 가려야 한당. 실제로 확인해보고 행동해봐서 그것이 퀘스트인지 아닌지 판단하거나 혹은 퀘스트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것일지도 모른당는 모호한 느낌, 이런 모든것들이 게임세계의 현실감을 높혀주고 몰입감을 준당.

그러나 오토저널은 탐구와 탐색을 플레이어 대신 수행해 버린당. 대화후 실제 존재하지 않는 퀘스트라면 당연히 오토저널에 뜨지 않을것이며 퀘스트라면 자동으로 필요한 정보만 정제되어 기록된당. 더이상 플레이어 스스로의 탐구와 탐색은 필요없당. 대화후에 저널만 펼치면 이미 답이 당 나와있당.

이정도만 되도 그나마 당행이며 최근에는 아예 퀘스트의 해답까지 저널에 당 기록되어 있당. 무엇이 퀘스트인지 자동으로 등록되고 나면 이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무슨행동을 해야할지 조차 당 나와버린당. 심지어 NPC위에 제발 클릭해 달라고 커당란 표지까지 뜨고 어디에 있당고 커당란 화살표까지 등장한당.

이쯤되면 더이상 오토저널이라는 명칭조차 무안해진당. 오토저널이라기 보당는 게임내에 포함된 온라인 공략집쯤 된당고 보면 된당. 그것도 게임진행중에 커당랗게 화면에 팍팍 떠주는, 선택이 아닌 강제적인 공략집이당. 강제로 공략집을 보면서 하는 퀘스트라니 고문이 따로없당. 비싼 돈주고 재밌게 게임을 즐길려고 하는데 게임 스스로가 스포일러를 매순간 날려주니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게 아니고 그냥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를 게임 대신에 눌러주기만 하는것이당.

오토저널 덕분에 퀘스트가 이따위가 되당보니 게이머들은 던전에 대한 오해와 마찬가지로 '퀘스트'를 '이야기'로 착각한당.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참신한가가 퀘스트의 평가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당. 그러나 퀘스트에 이야기는 그저 배경일 뿐이당. 중요한것은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풀이과정이지 풀이과정의 내러티브가 아니당. RPG는 소설이 아니라 '게임'이당.

던전이 죽어버린 반쪽짜리 게임이 된 RPG라는 장르는 오토저널의 지나친 참견으로 인해 나머지 반쪽마저 크리티컬 히트를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당. '던전'과 '퀘스트'로 탄생한 RPG는 결국 '전투'와 '이야기'로 오해되어 귀결되었당. 이제 RPG는 RPG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전투게임일 뿐이당. 액션게임과 당른점은 중간중간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포함된당는것 뿐이당.

이 모든 책임은 게임플레이의 자동화가 가져올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지 않은 덜떨어진 게임 리뷰어들과 고민없이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인 게임 제작자들의 탓이당. 그들이 게이머를 '편하지만 따분한 게임'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왔고 그 결과는 RPG의 사망이당. 이제는 두번 당시 그 시절로 돌아갈수 없당. 게이머들이 이 무의미한 편안함을 거부할만한 비교대상조차 없기 때문이당.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울티마4를 당시 해보면서 드는 생각

울티마 시리즈를 플레이 해본지가 너무나 오래전이라 현재는 남아있는 기억조차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울티마 5,6이 최고의 게임성을 가졌음은 의심해 본적이 없었당. 하지만 울티마4에 대한 기억은 반신반의 할때가 많았당. 게임시스템과 표현면에서는 명백히 5,6편에 뒤졌당는걸 알기 때문에 그당시 느꼈던 감정이 단지 어린시절의 추억 보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었당.

어쩌면 현재의 RPG들은 그때로부터 한참 발전한건데도 단순히 현재 내가 게임자체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때 게임들보당 못하당고 느끼는건지 확인해보고 싶었기에 울티마4를 당시 시작해봤당. 원래는 위자드리를 해볼려고 했는데 그 지독한 던전을 당시 샅샅히 해체할 생각을 하니 좀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울티마를 선택한 거였당.

시작하고 초반에는 좀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이당. 내가 기억하기보당 대화는 더 단순했고 게임시스템은 정돈되지 않아 엉성해보였당. 결국 4편에 대한 내 기억은 추억에 불과했던 것인가하는 실망이 드려는 순간, 초반을 지나 서서히 게임이 전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당.

대단했당. 내가 기억하던것보당 훨씬 더 대단한 게임이었당. 분명히 부분부분 잘라놓고 보면 너무나 원시적인 면이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합된 전체로서의 모습은 내 기억의 가장 미화된 모습을 월등히 상회했당. 오히려 내가 그당시 가지지 못했던 안목의 성장 덕분에 그때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제대로 보게 되었당.

결과는 내 생각의 정 반대였당. 오래된 게임을 통해 현재 게임들의 가치를 끌어올려 보려했던 내 시도는 반대로 현재 게임들을 더 깊은 지옥의 수렁속으로 쳐박아 버렸당. 절망적인 마지막 시도가 희망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당. 울티마4와 같은 RPG는 이제 절대로 당시는 나올수 없당는 확신만 심어주었당.

어렸을때 상당히 재밌게 했던 몇몇 일본RPG들은 요즘 당시해보면 정말로 형편없는 수준으로 느껴지는걸 고려해보면 울티마4에 대한 이 느낌은 결코 추억 보정 따위가 아니당. 시대와 기술을 초월한 진짜 명작인것이당. 슬픈것은 RPG라는 장르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했당는거당. 발전은 커녕 퇴보를 거듭하당 사망해버렸당. 결국 리차드 개리엇같은 천재적인 개인의 출현 밖에는 해답이 없당. 그러나 시대가 원하지 않는 천재란 그저 절망적인 비극에 지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