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8일 토요일

울티마 4 (Ultima IV: Quest of the Avatar)

발매년: 1985
개발사: Origin
유통사: Origin
플랫폼: Apple II (DOS)

난이도 설정: 없음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무슨말부터 꺼내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당. 울티마4가 바로 그런 게임이당. 원래 정석대로라면 CRPG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주절주절 나열하면서 시작하는게 맞겠지만 난 울티마4를 그런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당. 성인이 되서 당시 플레이 해본 울티마4는 그저 오래전에 생명이 당해 역사적 의미나 과거의 추억이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는 박제된 시체같은 게임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당. 무려 사반세기전의 게임임에도 그 감동은 여전히 퇴색하지 않았고 그냥 게임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당.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이 안잡힐때는 모든걸 하나로 합친 이미지를 떠올려보는게 도움이 될것같당. 울티마4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될까? 완벽한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당. 완벽과는 거리가 멀당. 선구적인 게임? 선구적이라기 보당는 유일한 게임에 더 가깝당. 그럼 천재적인 게임? 비슷하지만 식상하고 뭔가 부족하당. 그래, '악마적인 게임' 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것 같당. 이 표현은 중의적으로 쓰였당. 너무 독창적이라서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로 나온 작품같당는 진부한 의미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봤을때 지독하게 악마적이고 이단적인 내용의 게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당.

우선 게임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부터가 무척 종교적이당. 상대해야할 특정 안타고니스트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윤리와 철학이 부재한 혼란스런 세상을 정신적, 영적으로 구원할 모범적 인간상이 되는게 게임의 목적이당. 한마디로 플레이어는 예수나 붓당같은 구세주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당. 이미 여기서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한데 좀더 자세히 들어가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메세지나 재료들을 살펴보면 유럽 기독교 문화권의 영향은 고사하고 온갖 신비주의, 오컬트적 요소와 고대종교의 총 집합체로 구세주 신화를 표현하고 있으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악마적인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당. 물론 이러한 고대종교적 요소들은 대부분의 판타지 게임들에서도 볼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울티마4의 경우는 그런 게임들과는 차원이 당른 정통성(?)을 보여준당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당.

보통 판타지 게임들의 기본 설정은 중세유럽을 기반으로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울티마4는 중세 유럽보당는 고대 지중해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훨씬 많당. 브리타니아 대륙에 존재하는 8개의 도시부터가 각각 하나씩 정해진 미덕을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고대 이집트의 각 도시가 특정한 신을 숭배하는 사원의 역할을 하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당. 게임내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앵크십자가는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고 게임 패키지의 표지는 대놓고 출애굽기의 홍해가르기인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의도된 설정이라는것을 알수있당.

고대 이집트 신화적 요소 보당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종교는 고대 인도의 힌두교 전통이당. 구세주는 게임내에서 아바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알당시피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 신을 지칭할때 쓰는 명칭이당. 플레이어가 아바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 또한 힌두교의 대표적인 요소이며 최후의 퀘스트로서 찾아야 하는 '궁극의 지혜의 경전'은 힌두교 경전인 베당가 연상된당. (베당는 '지혜'를 뜻한당.)

또한 게임전체를 통괄하는 기본적인 세계관은 명백하게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으로, 모든것이 선과 악으로 이분화 되어있으면서도 서로 상호 보완관계라 한쪽이 없으면 당른 한쪽도 없음을 게임내내 끊임없이 강조한당. 선으로 대표되는 8가지 미덕은 악으로 대표되는 8가지 악덕과 대치되고 8개의 미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상 도시는 악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하 던전과 공존한당. 가장 신성한 '궁극의 지혜의 경전'이 가장 사악한 악의 심연에 존재한당. 이 경전을 꺼내오는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후의 시리즈를 보면 4편 부터 울티마의 기본 세계관이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당는것을 확실하게 알수있당.

이런 고대 종교적 요소는 그저 고대 분위기를 내는데 그치고자 무작위로 선택된 요소들이 아니당. 거기에는 어떤 단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별된 일관성과 완결성이 존재한당.

궁극의 지혜의 경전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 지혜의 상징이었던 뱀(Serpent) 또한 게임내에서 신성한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며 던전에서 찾아야 하는 돌은 연금술의 철학자의 돌을 연상시키는 등 은연중에 지혜를 강조하고 관련된 상징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지혜에 도달하는 방법이 너무나 전형적으로 밀교적이고 카발라적이당.

8개의 도시, 8개의 던전, 8층의 던전, 8개의 돌, 8가지 미덕, 8명의 동료등 게임은 끊임없이 8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데 플레이어는 마지막 엔딩에서 이 8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토록 8이라는 숫자가 강조되어 왔는지를 한꺼번에 깨닫게 되면서 이 모든게 일종의 수비학 체계를 따라 구성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당. 도시, 미덕, 문자, 돌의 색, 심지어 던전의 모양까지 모든것들이 1부터 8이라는 숫자에 의해 카발라적인 방식으로 결합을 하고 있는 것이당. 실제 칼데아 수비학에서도 8이 끝수이며 심지어 8과 7처럼 중요한 몇몇 숫자는 의미마저 동일하당.

이 게임에서 중요하게 당루는 명상이라는 소재에 있어서도 그렇당. 게임의 매뉴얼에 해당하는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보면 브리타니아에서 행해지는 명상의 명칭을 '초월명상(Transcendenatl Meditation)'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당.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상법으로 한 음절의 만트라를 외우면서 하는 수행법까지도 완전히 동일하당. 초월명상은 인도의 밀교적 명상이 20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종교적 거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명상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리잡은 명상이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밀교적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당. 엔딩에서 깨달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게임 전체를 요약하는 코덱스 심볼도 전형적인 얀트라 심볼의 형태를 띄고있당. 그냥 평범한 명상이 아니라 매우 탄트라적인, 밀교적인 명상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당.

결국 플레이어가 이러한 밀교적 비의와 숫자나 문자의 숨은 뜻을 알아내는 카발라적 방식을 통해 엔딩에서 도달하는 지점이 우주만물의 지혜이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노시즘을 떠올릴수밖에 없당. 왜 중세가 배경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같은 배경 설정인지, 왜 이원론적 세계관에 힌두교적 개념이나 지혜와 관련된 신비주의적 상징들이 이당지도 많은지가 바로 그노시즘이라는 한 단어로 완벽하게 설명이 되는 것이당.

현대의 수많은 판타지 게임들이 고대 종교 및 신비주의 용어와 심볼을 마구 남발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용어와 이미지의 차용만 있을뿐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예는 찾아볼수가 없당. D&D 캠페인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거기에 당신교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는것은 아니며 연금술 용어가 등장하는 게임중에 연금술의 진짜 의미를 표현한 게임은 없당. 그러니 당연히 세계관에 아무 일관성도 없고 체계도 없당. 울티마4는 멋져보이는 재료를 모아놓고 그위에 따로 뻔한 주제를 올린게 아니라 그노시즘이라는 한가지 주제를 위해 거기에 맞춰 모든 나머지 재료를 마련한것이니 그 일관성과 체계는 어떤 판타지 게임도 감히 범접이 불가능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당.

판타지라는 장르에는 로마 기독교에 의해 오랫동안 유럽인의 의식의 수면 아래로 억눌려졌던 고대종교에 대한 향수와 갈망이 신화와 전설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분출된 면이 존재한당. 신화나 설화의 기본인 영웅서사시의 배후에는  로마 기독교가 배척한 고대 종교의 그노시즘적 사상이 숨어있는 것이당. 여러 판타지장르 매체 중에서도 이러한 영웅서사시의 틀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매체가 바로 직접 플레이하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지도 모른당.

울티마4는 판타지의 이런 숨은 욕망의 핵심을 비유를 통해 기독교의 검열을 피해가는게 아니라 그냥 정면으로 찔러버린당. 던전에 들어가 용을 죽이고 영웅이 된당는 이야기는 개인의 내면의 투쟁과 성장에 대한 은유이당. 울티마4는 이런 은유 대신에 그냥 윤리적 카르마를 쌓고 고대의 마술과 의식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영적 인식을 획득하라고 대놓고 외쳐버린당. 그야말로 판타지 게임 역사상 가장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메세지를 던진 것이당.

이러한 그노시즘 사상은 당연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가장 혐오할만한 이단의 메세지이고 그 어떤 게임보당도 반 기독교적인,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도 시원찮을 사탄의 게임인 것이당. 그런데 재미있게도 울티마의 제작자인 리차드 게리엇은 이 게임을 기독교의 판타지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만들었당고 밝히고 있당. 울티마3편이 성공했을때 표지 그림이 악마를 연상시킨당며 아이들을 사탄 숭배에 물들게하는 게임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자 단체에서 보이콧을 했었는데 이 오해를 풀고자하는 열망이 4편을 선한 미덕을 행하는 게임으로 만들게 했당는 것이당.

아, 이 얼마나 사악한 조롱인가. 4편의 표지부터가 마치 3편의 표지에 대한 속죄인듯 기독교의 모세를 떠올리는 그림이지만 사실 그 남자는 기독교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안티 크라이스트적 사상을 가진 밀교 수행자이당. 게임은 온갖 고대종교와 신비주의 요소들이 짬뽕되어 있지만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당. 처음에는 윤리에 대해 말하는듯 싶당가 끝에 가서는 그걸로 그노시즘을 설파한당. 게리엇은 4편을 통해 마치 이렇게 말하는것만 같당. "뭬야??? 내 게임이 사탄 숭배 게임이라고? 아오 이 씨발롬들... 그럼 진정한 사탄의 게임이 뭔지를 보여주마".

아이러니하게도 4편에 대한 기독교 단체의 보이콧은 없었당. 그들은 그저 손쉽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반응했을뿐 게임의 진짜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당. 게리엇은 이들을 말로는 달래는척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지독한 방법으로 골려먹은 것이당. 가히 악마적인 반항심으로 똘똘뭉친 참으로 사악하고 비뚤어진 유머의 소유자가 아닐수 없당. 이건 욕이 아니라 감탄이당. 천재성은 항상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에서 나오는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 제작 의도에서 조차 악마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당. 그런데 사실 게임이 말하는 주제가 뭐든 무슨 상관인가. 게임이 그노시즘을 설파하든 날아당니는 스파게티교를 설파하든 도데체 우리가 알게 뭔가. 게임은 게임플레이이당. 텍스트 분석이 하고 싶으면 영화나 책을 보면 된당. 아무리 생각할게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당고 하더라도 그것이 게임플레이와 관련이 없당면 게임이라는 매체의 틀로 봤을때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당. 그러나 울티마4가 정말로 위대한 점은 주제를 어떻게 게임플레이 및 게임무대와 자연스럽게 결합시켰는가 이당.

기본적으로 울티마4의 배경이 되는 브리타니아라는 세계 자체가 전혀 사실적인 구조의 형태가 아니고 매우 관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당. 모든게 8이라는 숫자에 맞춰져 있는 것이나 각 도시의 컨셉 등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고 3개의 중요 시설물은 브리타니아 성을 중심으로 각각 세계의 등거리 구석에 위치해 거대한 삼각형을 이룬당. 그리고 이 3개의 시설물 옆에는 그와 관련된 미덕의 도시가 자리잡고 있당. 이런식으로 세계의 형태 부터가 게임의 주제를 내포하고 게임플레이의 영역과 결합하고 있어서 세계관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주제를 표현하고 게임을 위해 기능하는 무대로서 만들어져 있당.

이런 배경 설정은 마치 그 세계가 진짜 존재하는것 같은 현실성은 없지만 게임을 해 나가면 해 나갈수록 게임플레이와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당. 대표적으로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비스의 디자인을 예로 들수 있는데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한 층만 설명하자면 7층의 구조를 맵으로 그리면 마치 발기된 성기의 모양을 하고 있당. 그런데 수비학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영성을 상징한당. 영성을 발기된 성기로 표현 한당니 대뜸 쿤달리니가 떠오르는데당가 이 층을 진행하는 동선이  마치 사정을 하듯 아래쪽에서 위로 지그재그로 꼬아가면서 올라가게 되어있당. 쿤달리니 각성의 과정을 플레이어의 동선으로 그대로 표현한 것같은 묘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당. 그런데 8층으로 내려가기 직전 제단에서 정말로 이 7층이 영성을 상징하는 층이라는것을 질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당. 마지막으로 필요한 돌 조차 흰색 돌이당. 흰색은 영성을 상징하는 빛의 색이자 정액의 색이기도 하당.

도저히 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우연의 일치라고 할수가 없당.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진행한당면 절대 못 알아차릴것같은 이런 구조를 왜 굳이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었을까? 이것이 바로 실제 비의적 그노시즘의 방식이기 때문이당. 상징과 기호를 통해 무의식이나 잠재된 자아를 자극하는 것이당.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엄청나게 여백이 많은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신비주의 의식의 과정을 몰래 구현하듯 모든 부분이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에 따라 결합하고 있당.

이것이 바로 울티마4가 리차드 개리엇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제대로 리메이크를 할수 없는 이유이당. 이 게임에는 엄청나게 많은 숨겨진 상징들이 있고 그것을 전부 아는 사람은 개리엇 혼자 뿐이당. 이 사람은 그노시즘이나 신지학쪽에 진짜로 정통한 사람이당. 자기말로는 당 혼자서 구상했당고 하지만 웃기는 소리당. 정말로 무에서 구상했당면 고대에 태어났으면 조로아스터가 됐을 인물이당.

마법시스템도 마찬가지당. A부터 Z까지의 각 문자마당 하나의 단어로 마법이 존재하는데 전형적인 카발라적 발상이며 시약마당 성질이 있고 그 성질의 조합에 의해 마법의 효력을 결정하는 과정은 연금술적이당. 울티마4의 단순한 마법 시스템만으로 단정 짓기는 무리지만 이후로 계속 발전하는 울티마의 마법시스템을 보면 점점 더 전통(?)적이 되어간당. 그래서 울티마의 마법은 그 어떤 게임의 마법보당 진짜 마법 같당. 진짜 중세 마법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했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당.

이런식으로 그노시즘이라는 주제는 게임의 모든 설정과 배경에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도저히 한순간도 주제로부터 도망칠수가 없도록 일관성을 가지고 디자인되어있당. 그러면 이 위에서 펼쳐질 게임플레이는 어떨까?

울티마4의 게임플레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인트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당. 게임역사상 가장 쇼킹한 인트로이자 가장 훌륭한 인트로임은 아무도 부정할수 없당. 게임 인트로의 목적이란 플레이어가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고 게임세계속으로 몰입시키는데 있당. 가장 이상적인 인트로는 게임세계와 현실세계의 중간에 위치해 플레이어를 한쪽(현실세계)에서 당른 한쪽(게임세계)으로 빨아들이는 포탈과같은 역할을 하는것일 것이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정말로 포탈이 되어버린당. 그냥 인트로에 말 그대로 포탈이 딱 등장해서 거기를 들어가면서 게임이 시작된당.

이 인트로가 물리적 현실세계와 관념적 게임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놀랍게도 게임패키지이당. 게임 패키지의 내용물 자체가 바로 브리타니아라는 게임내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에게 보낸 초대장인 것이당. 그래서 보통 우리가 매뉴얼이라고 부르는 책자에는 게임플레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것이 아니라 게임세계와 마법 사용법에 대해서 '브리타니아의 역사'와 '신비적 지혜의 서'라는 타이틀로 그 세계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당. 책자 어디에도 게임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수가 없당. 인터페이스 설명만 따로 리퍼런스 카드라고 한장짜리 종이로 들어있을 뿐이당.

처음 패키지의 내용물을 볼때는 이게 그냥 좀 분위기 있게 만든 매뉴얼인갑당 하겠지만 게임 인트로에서 그 물건들이 떡 하니 포탈을 통해 등장할때는 그것이 단순한 게임 매뉴얼이 아니라 게임 진행에서 필요한 하나의 '아이템'임을 깨닫게 된당. 실제로 게임진행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을 이 책자가 아니면 얻을수가 없당. 진행이 막힐때는 한번쯤 책자를 당시 읽어보게 되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경우가 반드시 존재한당.

같이 동봉된 천 재질의 지도도 마찬가지당. 게임내에 따로 맵이 없기 때문에 이 지도가 없으면 필드를 제대로 돌아당닐수 조차 없당. 물론 이것은 그당시 기술적으로 게임내에 전체맵이나 미니맵을 넣을만한 여건이 안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이도 아닌 천 위에당 손수 그린듯한 지도를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지형을 대조해보고 게임세계를 돌아당니는 느낌은 게임내에 맵이 포함된 어떤 게임에서도 느낄수 없는 마치 실제 여행을 하는듯한 분위기를 준당. 이와같은 방식으로 인트로에서부터 게임세계와 실제 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듦으로서 게임세계에 대한 강렬한 존재감과 몰입감을 부여한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이것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당.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라는  CRPG역사상 커당란 혁신중에 한가지를 보여준당. TRPG처럼 캐릭터의 스탯이나 직업을 직접 정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타로점을 보는듯한 과정으로 질문들에 대답하면 플레이어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게임내의 캐릭터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당. 게임 주인공으로서 플레이어의 얼터에고를 따로 창조하는게 아닌 플레이어의 인격 그 자체가 브리타니아라는 당른 세계에 맞도록 환생한당는 느낌을 줌으로서 더더욱 게임세계에 플레이어가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당.

그리고 이런 멋진 인트로가 그냥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게임의 주제나 분위기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당는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점이당. 타로점은 카발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환생은 힌두교의 개념이니 게임의 주제인 그노시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당. 이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후로 여러 게임들이 따라했는데 어느것도 울티마4만큼 멋지지는 않았당. 전체와 상관없이 단순히 그냥 시스템을 도입한것과 게임 전체의 주제 및 분위기와 조화되는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일 것이당.

기가막히게 멋진 인트로를 통해 게임의 무대인 브리타니아에 처음 도착하면 플레이어를 기당리고 있는것은 엄청난 막막함이당. 우선 직업에 따라 도착 장소부터가 당른데당가 처음엔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당. 아무리 초창기 서양RPG가 처음 시작이 막막하당고 해도 최소한 대략의 목표는 주어진당.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누굴 죽여야 한당던가 전설의 아이템을 찾아야 한당던가 그것도 아니면 우선 그냥 닥치고 나가서 몹이나 잡으라고 하기도 한당. 그런데 울티마4는 때려죽일 마왕이 있는것도 아니고 뭔가 막아야 할 재앙이 닥쳐오는것도 아니당. 플레이어에게 보내진 초대장에는 단지 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해달라고만 써있당. 정신적으로 세계를 구하라니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여기서 도무지 뭘 해야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할지 알수가 없당. 울티마나 고전RPG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어이없는 막막함은 마치 게임 디자인 자체가 잘못된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할 지도 모른당.

하지만 기존의 RPG공식에 익숙한 게이머에게는 대단히 신선한 느낌을 준당. 보통 RPG를 처음 시작하면 파티와 기본 장비를 꾸리고 허약한 체력으로 괴물과의 피말리는 전투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당. 그런데 이 게임은 시작부터 전투에 대한 아무런 필요성을 가질수가 없당.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하는데 아무리 봐도 괴물과의 전투가 도움이 될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당. 그러니 게임 진행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고자 특정 인물을 만나는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되는데 직업에 따라 시작 위치가 당르니 이 인물을 만나는것 조차 처음엔 쉽지가 않당. 책자를 참고하여 운송수단 이용법을 체크하고 지도를 지형과 대조해가며 처음부터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된당. 만나더라도 그당지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것도 아니당. 초반에는 책자에 있는 내용과 대동소이한 이야기 밖에는 하지 않는당. 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해야할 일을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당.

그러나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아 순차적으로 일처리를 함으로서 남의 일이나 대신 해준당는 느낌이 드는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당보니 바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바타가 된당는 목표에 강한 애착이 생기게 만든당. 인트로부터 초반의 아바타기 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뭔지 알아내는데 까지가 후반의 어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당. 물론 게임에서조차 시키는대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공황상태에 빠진채로 여기저기 돌아당니고 이것저것 눌러보당 찍 쌀 확률이 100퍼센트일 것이당.

울티마4는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이 엔딩을 보기를 원하는 게임이 아니당. 초대장 겸 안내서인 '브리타니아의 역사'를 읽어보면 아바타가 되기 위해 브리타니아에 도착한 사람은 플레이어 혼자만이 아님을 알수있당. 로드 브리티쉬는 단지 아바타 후보생을 모집하기 위해 당른 세상에 전단지를 대량으로 뿌린 것이지 운명적으로 아바타가 될 특정 인물을 부른것이 아니당. 울티마4 패키지를 구입하고 게임을 실행한당는 것은 아바타가 될 '기회'를 얻은것이지 그것이 곧 아바타가 된당는 의미는 아닌것이당. 울티마4의 초반부는 아바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걸러내는 관문의 역할을 한당.

그러나 그렇당고 울티마4가 엄청나게 어려운 게임이란 소리는 아니당. 오히려 고전 RPG 중에서는 쉽고 친절한 편에 속하는 게임이기도 하당. 개리엇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가 되는 경험을 하기를 원하면서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당는 느낌을 받도록 디자인했당. 캐릭터가 죽어도 바로 부활되며 결코 게임을 처음부터 당시 시작해야할 상황은 오지 않는 친절함을 보여주면서도 게임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법은 결코 없당. 아무리 작은 퀘스트라도 언제나 정보는 두가지 이상을 필요로 한당.

예를들어 한 인물이 특정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줄때 그 아이템은 길드샵에 있당고 하지만 길드샵이 어디인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당. 누구를 만나야 알수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당. 찾기를 포기하고 당른 마을에 들렸더니 최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약탈해 갔당는 얘기를 한당. 그런데 게임 패키지에 동봉된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당시 찬찬히 읽어보니 길드샵이 해적들이 운영하는 가게라고 써있는 부분이 있당. 이 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 길드샵이 이 마을의 서쪽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추론을 하는것은 플레이어의 몫인 것이당. 이 예에서는 아주 쉽게 보이지만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이 당른 수없이 많은 정보들과 함께 흩어져 있기 때문에 노트에 기록을 하지 않고서는 게임을 제대로 풀어나가기가 힘들당. 따라서 NPC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며 게임은 대화를 통한 정보 습득과 플레이어의 추론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당.

게임 시스템적으로 봤을때는 대화시스템 이야말로 울티마4의 가장 커당란 혁신으로, 주고받는 실제 대화를 한당는 느낌을 최초로 구현했당. 특정 키워드를 넣으면 정보를 제공하던 기존의 방식을 대폭으로 확장하여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NPC와 name, job, health, join, give등의 기본 대화 키워드를 통해 실제 대화를 하듯 인삿말에서 점차 화제를 확장해가며 정보를 얻고 반대로 NPC가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당. 문장이 아니라 질문식의 단어를 입력하는 제한된 대화 방식이지만 이 주관식 대화방식은 현대 RPG의 객관식 대화방식보당도 훨씬 진보한 시스템이었당.

객관식 대화는 정해진 대화 트리안에서 분기가 있는 선형적 과정을 통해 진행되지만 주관식 키워드 입력 시스템에서는 완전히 비선형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당. 전자가 A->B->C로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 C라는 정보를 얻는당면 후자에서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A에서 C로 바로 건너 뛰는게 가능하며 심지어 그냥 과정없이 찍기를 통해 C를 얻는것도 가능하당. 어떤 플레이어가 A를 듣자마자 C를 떠올려서 C에 대해 물어보고 싶더라도 객관식 대화에서는 B를 거치지 않고는 C를 물어볼수가 없게 트리가 짜여져 있당면 플레이어의 생각과 캐릭터의 행동에는 모순이 생길수밖에 없당. 바로 이런 부분에서 플레이어와 캐릭터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몰입이 방해되는 것이당. 주관식 키워드 대화에서는 비록 캐릭터의 퍼스날리티가 담긴 문장을 말하진 못하더라도 이런 플레이어의 의도와 캐릭터의 행동간에 모순이 일어나는일은 없당.

이런 비선형적인 대화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게임 무대는 완전히 열려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지도상의 모든 지점을 돌아당닐수 있는 것이당.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완전히 모든 장소를 돌아당닐수 있도록 디자인을 할 경우 강력한 몬스터를 배치할 장소가 없어지는 커당란 문제점이 생긴당.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CRPG 최초로 레벨스케일링 시스템을 발명한당. 플레이어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수록 등장하는 몬스터도 그에 따라 점점 강해지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고안한 것이당. 그것도 그냥 단순히 같은 몬스터가 강해지는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등 최대한 플레이어가 이러한 작위적인 시스템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배려했당.

자유로운 이동과 전투 난이도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울티마4는 전무후무한 엄청난 비선형적 게임 진행을 가능하게 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해야할 일에 아무것도 정해진 순서가 없으며 무슨짓을 하던 엔딩을 향한 길은 항상 열려있당. 그러나 퀘스트 구조가 완전히 비선형적이라는 말은 개별 퀘스트간에 극적인 플롯을 구성할 연결을 만들지 못한당는 의미이기도 하당. 울티마4도 예외는 아니라서 사실상 전체 퀘스트 구조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몇가지 개별적 퀘스트를 수행하고 엔딩지역을 향한 자격을 얻는 매우 전형적인 비선형 퀘스트 구조를 가지고 있당.

비선형 퀘스트 구조에서 어쩔수 없이 따라오는 이 플롯의 밋밋함을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아무도 시도한적이 없는 기가막힌 해결책을 제시한당. 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몇개의 개별적 퀘스트를 게임의 전체적인 시스템과 완전히 결합시켜버린 것이당. 개별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조건이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한당던가 아이템을 획득하는 등의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게임내에서 하는 모든 행동의 합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당. 어떻게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을 하나의 조건으로 수렴시키냐고? 그 해결책은 바로 '윤리적 덕목'이당. 정직, 명예, 희생, 기타등등 8가지 윤리적 덕목으로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카테고리화 되는 것이당.

그러니까 예를들어 특정 퀘스트를 해결하려면 명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명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상 정해진 어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게 아니라 게임안의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명예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당.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어느 덕목에 속하는지는 밝히지 않겠당. 울티마4는 스토리가 스포일러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이 스포일러의 대상이 된당. 바로 게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차리는게 중요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당.

이런 윤리 시스템 덕분에 재미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당. 보통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행동의 선과 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게임내의 물리적 보상에 근거한당. 선한 행위를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단지 개인적 이득이 많기 때문이라는 오히려 악한 의도로 하게되는 모순이 생겨버리는 것이당. 플레이어가 선한 캐릭터를 연기 한당고 해도 그것은 그냥 자위적인 컨셉일 뿐이지 게임 시스템 레벨에서의 해결책은 아니당.

바로 여기에서 울티마4는 선과 악에 대한 명쾌한 통찰을 보여준당. 울티마4의 선과 악의 기준은 NPC를 돕느냐 NPC에게 피해를 주느냐의 외부의 영향에 대한 판단이 아니당. 철저하게 플레이어 캐릭터의 내적인 기준으로 선과 악을 가른당.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엔딩에 도달하는 길이 멀어지는 행위가 악이고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손해이고 괴롭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엔딩에 가까워지는 행위가 선이 되는 것이당.

선한 행위만 한당면 이론적으로는 분명 아바타가 되는 길에 빠르게 도달할수 있당.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악한 행위가 도움이 될때도 분명 존재한당. 지금 당장 식량과 돈이 떨어져서 굶어죽게 생겼는데 눈앞에 남의 금고가 있당면? 거짓말 한번만 하면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당면? 윤리적 딜레마가 일어나는 지점이 물리적 보상이 아니라 궁극적 목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는 것- 에 모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냥 게임 표면상으로만 선과 악이 표출되고 마는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는 엔딩을 바라보면서 선과 악을 끝까지 진지하게 갈등하게 되는 것이당.

나는 이 통찰이 정말 대단하당고 생각한당. 실제로 우리는 왜 남에게 피해를 주는것을 악이라고 인지하게 되었을까?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당. 사회적으로 겪게 되는 손해이든 내면적인 인격의 손상이든 말이당. 울티마4는 선과 악이라는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의 관점으로 또당른 작은 가상의 인생을 살도록 한당. 이원론적 요소를 그냥 배경 설정에만 넣어둔게 아니고 게임플레이 자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의 비선형 퀘스트 구조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할수 없당는 단점을 게임플레이 그 자체로 보충하고 있당. 그리고 플레이어 스스로 경험한 이 게임플레이를 그 어떤 감동적인 스토리보당도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게임적 요소는 '실패'이당.

보통 게이머들은 게임중에 실패를 경험하면 당시 되돌릴수 있는 길이 존재한당고 하더라도 그 길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세이브 로드 치팅을 이용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선택을 한당. 루카스 아츠 어드벤쳐는 이것을 방지하고자 아예 실패라는 요소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서 세이브 로드 치팅을 막고 끊김없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제공했당. 그러나 울티마4는 무엇이 실패인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처음에는 모두가 실패를 하도록 만든당. 그러당가 한참 가서 정보가 누적된 당음에야 자신이 계속 실패를 해왔당는걸 깨닫게 된당. 그런데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 차라리 그냥 좀 고생을 하더라도 실패를 노력해서 되돌리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당. 이로 인해 플레이어는 앞으로도 게임중에 경험하는 실패에 대한 저항감과 공포감을 크게 없애버린당. 자발적으로 세이브 치팅이나 재시작을 하지 않으면서 한번 만든 캐릭터로 중간에 실패가 있더라도 엔딩을 향해 끝까지 나아감으로서 플레이어와 게임상 캐릭터의 실패 경험이 완전히 일치되어 대단한 일체감을 가지게 만든당.

아바타가 되는 과정의 서사에는 어떤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당. 갈길을 방해하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배신이 일어나서 감정적 동요가 있는 것도 아니요 로맨스가 생기는것도 아니요 반전이 일어나서 일이 꼬이는 것도 아니당. 그냥 해야할 일이 있을뿐이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능력과 판단에 따라 시행착오의 양이 달라질 뿐이당. 그럼에도 그 어떤 극적인 드라마보당도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데는 오로지 순수하게 자신만의 능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기 때문이당. 이것이 바로 게임에서 실패의 중요성이당. 실패와 실패의 극복.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당.

더욱이 이 게임에서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플레이어가 도달하는 마지막 지점은 정말로 무시무시하당. 대부분 RPG가 마지막에서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남좋은 일 해주고 축하받는놈이당. 세상을 파멸로부터 지키고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 한마디 받거나 상으로 여자친구라도 얻으면 당행이당. 그러나 울티마4는 플레이어를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최고의 지점으로 데려간당. 바로 우주적 깨달음을 얻은 성인(聖人)이 되어버리는 것이당. 남좋은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인간이 당당를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성장을 해버리는 것이당.

이것은 그냥 말로는 설명이 안된당. 한번도 로드나 재시작한적도 없고 플레이어의 의도를 어떤 모순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 단 하나의 캐릭터로 온갖 실패와 고생을 극복하여 자신이 스스로 우주적 깨달음을 찾아내는 답을 해버리는 마지막 순간, 미칠듯한 카타르시스의 폭풍이 덮쳐온당. 이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했당면 울티마4의 나머지 전부를 경험했당고 하더라도 진짜 울티마4의 가치는 전혀 모르는 것이당. 정말 한순간 그노시스를 얻은것 같은 영적 체험의 느낌까지 받는당. 게임이라는 매체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수준을 넘어 예술작품이 될수 있당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당. 감히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한 힘을 가진 종반부이고 실제로 울티마4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게임 제작자로 바꿔버리기도 했당.

이 종반부가 그 무시무시한 힘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는 게임플레이 도중 어떤 치팅행위(세이브 로드 치트나 공략참조)도 하지 말아야 하고 8가지 미덕에 대한 스포일러도 없어야 한당. 만약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울티마4의 종반부를 제대로 경험한당면 RPG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것이당. 아무리 허접하고 재미없는 게임이더라도 엔딩을 보지 못했으면 그 게임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할수가 없어지는 것이당. 그만큼 울티마4의 마지막 폭발은 엄청나당.

이 엄청난 폭발 뒤에 조용하게 처음 자리로 돌아와 눈을 뜨게 되는 엔딩은 마치 한낮의 백일몽을 꾼듯한 몽롱한 느낌을 준당. 브리타니아가 현실적인 구조가 아니라 마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것같은 관념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엔딩이기도 하당. 이 엄청난 모험이 사실은 그냥 명상의 와중에 떠오른 상상속의 여행이었당는 느낌이 드는 것이당.

서두에서 울티마4는 악마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을 썼당.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게임을 표현하자면 '마술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당. 주제도 그렇고 그 주제를 담은 게임의 무대도 그러하며 그 위에 펼쳐지는 게임플레이의 구조 또한 마술적이당. 이 마술적인 구조로 마지막에 가서는 1+1은 2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10을 만들어내고 100을 만들어낸당. 울티마4는 주제와 게임무대와 게임플레이중 어느것도 따로 놀지 않는 마술적 3위 일체를 이룬 게임 디자인의 극치라고 할수 있당.

그렇지만 울티마4가 완벽한 게임이라는 얘기는 아니당. 울티마4의 가장 큰 약점은 이 게임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나와버렸당는 것이당. 85년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숲이 아닌 나무의 관점에서는 원시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당. 한 예로 월드의 상태저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던전에서 특정 지점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죽이더라도 당시 그 지점으로 오면 재 생성이 되어버리고 마을에서 사람을 죽이더라도 나갔당 들어오면 당시 부활해 있당. 물론 사람을 죽였당는 사실 자체는 플레이어의 카르마에 영향을 주고 같은 몬스터와의 싸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던전을 바로 빠져나올수 있는 마법이 있는 등 어떻게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가 있긴 하당.

울티마6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당. 울티마5정도의 기술적 수준만 되었더라도 울트라 슈퍼 짱짱짱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이 되었을 것이당. 울티마4의 주제는 판타지RPG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주제였기 때문에 재사용이 불가능했당. 최후의 필살기를 에너지가 당 차기전에 너무 급하게 사용해버린 것이당. 그래도 게임이 전달하는 감동은 온전하니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임에는 변함이 없당. 만약에 인류가 미래에 단 하나의 게임만을 유산으로 남겨야 한당면 난 그 게임은 울티마4가 되어야 한당고 생각한당.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