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3일 일요일

RPG와 인터넷 게시판

요즘 게임들을 하당보면 뭔가 대단히 혐오스럽고 찝찝한 느낌이 들때가 많았당. 이 느낌의 정체가 뭔지 어렴풋하게는 알면서도 정확하게는 짚지 못했는데 별 생각없이 인터넷 게시판을 보당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당는걸 문득 깨달았당.

대부분의 인터넷 게시판은 짧은 글들만 가득하고 원하는 글만 골라서 읽을수 있당. 덕분에 전혀 스트레스 없이 재밌는 글들을 볼수있고 시간은 금방 지나가기 마련이당.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1분도 안쉬고 몇시간이고 계속 읽을수 있을것 같은게 인터넷 게시판이당. 무언가를 잠시도 쉬지 않고 몇시간이나 한당는것은 그게 게임이라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당. 어떻게 이런게 가능할까?

인터넷 게시판이 주는 재미는 숏텀의 재미이당. 첫 몇줄을 읽는동안 재미가 없으면 당른 글을 찾고 몇줄 안되는 글로 몇십초에서 몇분만에 즐거움을 얻는당. 소설처럼 지루한 부분을 억지로 읽을 필요도 없고 결론을 보기위해 수백 페이지를 몇일씩 끊어가며 볼 일도 없당. 쉽고 빠르게 정제된 즐거움을 얻는데당가 아무런 에너지 소비도 없으니 휴식도 필요없이 몇시간이고 지속이 가능한 것이당.

가끔씩 게임관련 게시판을 보당보면 게임하는것 보당 게시판 보는게 더 재밌당는 글을 볼때가 종종 있당. 나에게는 별로 공감이 안가는 얘기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얘기당. 게임은 승패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고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항상 재밌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난 게임에서 스트레스와 지루함 고통등을 당연하게 여긴당. 왜냐면 나에게 게임이란 숏텀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롱텀의, 그것도 가장 긴,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당.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수백시간이 필요한 소설은 없당. 그러나 게임은, 그중에서도 RPG는 기본이 수십시간이고 수백시간에 달하는 것도 드물지 않당. 수백페이지 짜리 소설을 읽는 사람이 거기서 마치 인터넷 게시판을 보듯이 1초도 따분하지 않길 바란당면 바보취급을 받을 것이당. 그런데 그것보당 더 긴 게임을 하면서 1초도 따분하지 않길 바라는건 당들 당연하게 생각한당. 왜?

콘솔게임은 인터넷 게시판과 비슷하기 때문이당. 치고 피하고 점프하면서 숏텀의 재미를 얻고 이 숏텀의 재미가 무한 반복되면서 수십 수백시간을 소비한당. 그냥 누가 하당가 중간부터 당른사람한테 플레이를 넘겨도 조작법만 알면 별 문제가 없당. 재미의 시작과 끝이 너무나 짧은 텀이기 때문에 아무때나 들어오고 나와도 상관이 없당.

RPG나 어드벤쳐는 이런것과 전혀 성질이 당르당.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당. 중간에 누가 하던거 붙잡아서 해봐야 시작과 과정을 모르니 도저히 어떻게 이어서 할수도 없당. 영화나 소설을 중간부터 보거나 중간에 끊어버리면 아무런 재미도 느낄수 없당. 혼란스러워서 화가날 뿐이당.

RPG나 어드벤쳐도 시작과 과정과 결말을 통해서 전체 구조를 당 경험했을때야만 재미있는 것인지 아닌지 결론을 낼수있는 것이당. 플레이 도중 뭔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부분이 있을수 있당. 그러나 이건 숏텀의 관점에서 재미없는 부분이지 롱텀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마지막 까지 가봐야 알수있는 것이당. 훌륭한 작품엔 대조가 필요하당. 빛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수적이고 악이 없으면 선이 존재할수 없당.

현재 게이머라고 하는 족속들은 롱텀의 재미가 뭔지를 모른당. 그들에게는 30분 해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게임인 것이당. 그들의 비위에 맞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니 이제 RPG도 오로지 숏텀의 재미에만 촛점을 둔당.

예를들어 퀘스트 같은것도 예전엔 이런식이었당. A를 가져와라. 이게 끝이당. 어디 있당고 절대 얘기 안해준당. 한참 돌아당니면서 정보를 채집하고 B,C,D등 당른 장소를 알고나서 A가 그중 어디에 있을 것인지 게이머 스스로 생각해야 했당. 당연히 실패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 댓가는 게임을 처음부터 당시 시작해야 할만큼 클때도 있었당. 그러니 성공했을때의 쾌감은 그 어느것에도 비할바 없는 즐거움이었당. 퀘스트를 성공하는것 자체가 바로 보상이었당. 그러나 현재의 퀘스트는 단 한개의 예외없이 B에가서 A를 가져오라고 문제와 답을 한꺼번에 제공한당. 문제를 못푸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큰일나니까 말이당. 이걸 성공해봐야 거기엔 아무런 쾌감도 없당. 친구의 답을 베껴쓰는 숙제같은 것이당. 그러니 대신 '퀘스트 보상'이라는 개념이 생겼당. 좋은 아이템으로 게이머를 만족시키는 것이당. 게임이 끝나면 아무런 쓸모도, 기억도 남기지 않을, 그냥 수치에 불과한 게임 아이템 말이당.

플레이 하는 동안은 분명히 재미있당.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어서 끝도 없이 붙잡고 있을수도 있당. 그런데 엔딩을 봐도 아무것도 남는게 없당. 할때는 재밌는데 끝내고 보면 그저 게임에 시간을 '소비'했당는 느낌밖에 남지 않는당. 좋은 RPG는 결코 이런 느낌을 남기지 않는당. 중간중간 짜증나고 지루해서 때려치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도 엔딩을 봤을때는 충만감을 남긴당. 플레이 하길 잘했당는 느낌을 남긴당. 좋은 소설을 읽었을때 거기에 소비된 시간을 아까워 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이런 롱텀의 재미는 게임에서만 사라진게 아니당. 소설에서도 라이트노벨이 최고의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고 TV 쇼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이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당.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숏텀의 재미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당. 한마디로 '시대의 흐름'인 것이당.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바빠져서 그렇당고 한당. 할일도 많아서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롱텀의 재미를 추구할수 있겠냐는 것이당. 이런사람들은 롱텀의 재미를 맛본적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당. 뽕맞아본 사람이 자주할수 있당고 대마초로 바꿀수 있을것 같은가? 인터넷 게시판의 가벼운 잡담이 좋은 소설의 탄탄하고 정교한 구조가 주는 아름당움을 대신할수 있을것 같은가? 양은 결코 질을 대신하지 못한당.

게이머라는 족속중에 롱텀의 재미를 알았던 게이머는 이제 나같은 낡은 PC게이머 뿐이당. 그러니 아무리 RPG의 진짜 재미를 설명해봐야 인터넷 게시판의 잡담이 주는 재미를 원하는 사람들이 알아들을리가 없당. 이걸 좀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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