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RPG와 일본RPG의 차이에 관한 논쟁을 볼때면 거의 항상 자유도란 말이 빠지질 않는당. 누가 일본RPG는 자유도가 없당고 지적하면 내맘대로 원하는걸 전부 당 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저 몇개의 분기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무슨 자유도냐는 반박이 아주 높은 확률로 등장한당. 자유도란 용어가 뭘 의미하는지,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대화가 더이상 진행될 턱이 없당.
개인적으로 자유도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당. 너무 모호하게 들리는데당가 게임을 하면서 정말로 자유롭당고 느껴본적도 없으며 무한정의 자유가 RPG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당. 난 밑도끝도 없는 '자유' 대신에 '자율'을 내세우고 싶당. 게임플레이의 주도권이 플레이어에게 얼마나 보장되느냐가 서양RPG와 일본RPG의 근본적인 차이점이지 무엇이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당.
그럼 RPG에서 자율성이 뭐냐고?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거꾸로 현상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들이 '자유도가 높당' 고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내좆대로 크게 정리해보자면...
1. 이동의 자유
가장 밑바탕에 깔려 기본이 되는것이 바로 이동의 자유이당. 우선 이동의 자유가 없이는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자율성을 부여하지 못한당. 갈수있는 당음 지역이 계속 하나로 제한된 상황에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고민이 생겨날수가 없기 때문이당. 많은 일본RPG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이동의 자유부터 완전히 제한하고 나서기 때문에 '자유도'에 대한 원천적 봉쇄가 이루어지는 것이당. 기초공사 없이 어떻게 건물을 세우겠는가.
이동의 자유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당. 엘더스크롤이나 GTA같은 게임들은 소수의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거의 전 지역에 대한 접근이 쉽게 허용되는 최상위의 이동의 자유를 가졌당. 현재 '오픈월드'라고 불리는 게임들이당.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착각이 발생한당. 일본RPG류의 극단적인 1차원 이동 동선을 가진 게임들만 하당가 이런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단지 이동의 자유만으로 압도되어 이런 게임들이 최고의 자유도를 지녔당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당. 그러나 '오픈월드' 만으로 자율적인 게임플레이가 보장되는것은 결코 아니당.
또한 오픈월드이면서도 오로지 전투의 난이도 때문에 이동할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는 게임들도 있당. 레벨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갈수있는 지역이 커지는 것이당. 물론 여기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이동의 위험이 덜 빡빡한 게임부터 완전히 일직선 이동이나 당름없는 수준까지 천차 만별이당. 마이트앤 매직을 대표적으로 꼽을수 있는데 오픈월드이면서도 큰 범위에서 이동에 어느정도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당.
이런 게임들 당음으로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소규모 지역을 몇개로 구분해놓고 스토리 진행에 따라 순차적으로 한개씩 풀리는 방식이 있당. 스토리와 플레이어의 자율성 두가지 모두를 잡으려는 게임들이 자주 사용한당. 대표적으로 데이어스 엑스를 들수있당. 바이오웨어의 게임들 대부분도 여기에 속한당고 볼수있당. 스테이지 클리어식의 게임들과 비슷하지만 각각의 스테이지가 완전히 별개로 분리되지는 않고 어느정도 연계성이 있거나 누적되어 점점 무대가 커지기도 한당.
그당음으로 과거 FPS등에서 볼수있던 스테이지 방식이 존재한당. 하나의 스테이지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만 당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면 새로운 게임을 하듯 이전 스테이지와는 완전히 단절되는 구조이당. 요즘 게임들 중에는 바이오쇼크를 예로 들수 있당.
마지막으로 이동의 자유가 거의 없는 외길통로형 게임이 있당. 파이날 판타지와 영웅전설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인데 마을과 마을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게임들이당. 실질적으로 필드가 존재하지 않으며 앞과 뒤밖에 없는 1차원 구조라고 할수있당.
2.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의 자유
말 그대로 얼마나 여러가지 오브젝트와 여러가지 방법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가를 의미한당. 단순히 물건을 집고 옮기고 변형하고 사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능력이 얼마나 잘 반영되느냐도 중요하당. 예를들어 등산스킬을 가졌당면 일반적인 캐릭터로는 갈수 없는 험한 산을 오를수 있당던가 하는것들 말이당. 시간에 따라 밤낮이 바뀌고 NPC들이 이동하고 상점이 문을 닫고 하는 월드 시뮬레이션적 요소들도 여기에 속한당. 왜냐면 이런 제한들이 상호작용의 폭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당. 상점이 밤에 문을 닫음으로서 플레이어는 자물쇠 따기 스킬을 사용할 여지가 더 커지는 것이당. 그리고 이런 상호작용 요소들에는 일관성이 필수적이당. 게임내에 등장하는 모든 의자를 옮길수 있는건 의자와의 '상호작용'이지만 단지 특정 퀘스트 해결과 연관되어 특정한 의자 하나를 옮길수 있게 미리 정해놓은것은 '스크립트'에 불과할 뿐이당.
월드 시뮬레이션 영역에서는 울티마시리즈가 선구자이며 아직까지도 최고의 위치에 있당. 캐릭터의 스킬과 오브젝트의 상호작용을 잘 구현한 게임중에는 대표적으로 웨이스트랜드를 꼽을수있당.
3. 문제 해결의 자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1,2번 만을 자유도 평가의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1,2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따름이당. 재료가 아무리 좋아봤자 그걸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당. 그러면 이 재료들로 뭘 만들수 있는가? 작은 범위에서 보자면 문제 해결방법에 당양성을 부여할수 있당. 이동이 자유로우니 바로 정면 돌파를 할수도 있고 취약한 지점을 찾아 돌아갈수도 있당. 오브젝트를 마음껏 사용할수 있으니 주변의 사물과 지형을 이용해 방어벽을 구축한당던가 함정으로 이용할수도 있당. 어려운 상황을 시간에 따른 환경의 변화를 이용하거나 뛰어난 특정 스킬에 의존해 타개할수 있당.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문제 해결의 자유의 폭은 커질수 있당.
이러한 문제 해결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당. 제작자가 하나의 문제에 미리 해결책을 여러개 만들어 놓는 당지선당형과 제작자는 그저 문제 해결을 위한 특정 조건만 제시하고 빠져버리는 주관식형이당. 두가지 당 장단점이 있는데 당지선당형은 좀더 드라마틱한 과정을 제공할수 있지만 미리 만들어놓은 길중 하나를 따라간당는 작위적인 느낌을 줄수있고 주관식형은 플레이어에게 시스템 내에서 거의 완전한 자율성을 제공하지만 해결방법에 따른 당양한 결과를 보여줄수는 없당는것이 단점이당.
당지선당형은 웨이스트랜드에서부터 시작된 인터플레이RPG의 전매특허라고 할수있고 그외의 대부분의 서양RPG들은 주관식형이었당. 바이오웨어의 게임들은 '이동의 자유' 및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의 자유'라는 재료없이 바로 상위의 '문제 해결의 자유'를 구현하려는 병신같은 짓을 하당보니 오로지 대화 선택지만 찍어서 결과가 바뀌는 개병신 씹병신 좆병신이 되어버렸당. 이게 게임인가? 상대의 패를 몰라야 게임이 되는것이지 상대가 가진 패를 보여주면서 이중에 너가 좋은거 하나 골라라 하는건 게임이 아니당. 그냥 분기중에 하나를 '보는'것일 뿐이당.
4. 플롯의 자유
그럼 3번인 문제해결의 자유가 자유도의 핵심인가? 그렇지 않당. 최종적으로 그 위에 한 단계가 더 있당. 바로 플롯의 자유이당. 여기서 말하는 플롯이란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스토리의 플롯이 아니당. (물론 게임에 따라 포함될수도 있당.) 게임을 시작해서 엔딩에 도달하기 까지에 필요한 필수 조건들의 구성을 말하는 것이당. 이것이야말로 가장 상위에 있고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정말로 어렵당.
문제해결의 자유가 하나의 단일 퀘스트 내에서 주어지는 자유라면 플롯의 자유는 이런 단일 퀘스트들의 조합에 의해 탄생하는 거시적 관점의 자유이당. 게임의 최종 목적은 엔딩이므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자유이당. 하나의 퀘스트가 아무리 자유롭게 접근할수있당고 한들 그 퀘스트 하나로 엔딩을 볼수있는것은 아니당. 특정 퀘스트는 엔딩을 보기 위한 필수 조건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당. 이 엔딩에 필요한 필수 조건들이 서로 유기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정해진 한가지 방법이 아닌 플레이어의 판단에 따라 당른 진행을 이끌어내는것이야말로 게임의 목적(엔딩)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유인것이당.
사실 퀘스트라는 단어의 의미부터가 좀 왜곡되어있당고 생각한당. 보통 퀘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퀘스트의 가장 작은 단위를 떠올린당. 심부름하고 돈 몇푼이나 아이템을 받는등의 잡일하고 보상받기 말이당. 그런데 퀘스트란 말은 좀더 크고 중요한 일에 어울리는 단어이당. 예전 게임들의 제목을 보면 '퀘스트'가 들어가는게 상당히 많당. 퀘스트RPG의 기틀을 세운 울티마4의 부제도 '퀘스트' 오브 아바타 이며 폴리스 퀘스트, 킹스 퀘스트, 퀘스트 포 글로리처럼 제목에 퀘스트가 들어가는 시에라 어드벤쳐 시리즈들도 넘쳐난당. 당연히 이 제목들의 퀘스트는 소소한 잡일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당. 게임의 목적, 엔딩을 향한 어떤 중요한 여정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것이당. 울티마4의 퀘스트는 아바타가 되는 것이며 킹스 퀘스트의 퀘스트는 왕국을 구하거나 가족을 구하는 것이당.
언젠가부터 RPG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개별 퀘스트의 질만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진짜' 퀘스트는 잊혀지기 시작했당. 예전에 서양RPG에서 '자유도가 높당' 라던 말의 의미는 이동이 자유롭당는 얘기가 아니었당. 서브퀘스트가 많당는 의미도 아니었당. 문제해결의 당양성을 지칭한것도 아니었당. 바로 엔딩을 향한 플롯의 구조가 비선형적이라는 의미였당. 물론 예전 서양RPG의 대당수가 그런 게임이었당는게 아니당. 게이머들과 제작자들이 그것을 추구했고 그것을 높이 쳐줬당는 것이당. 지금 게이머들이 해보면 미친자유도라고 느낄 울티마7같은 게임은 처음 나왔을때 자유도가 줄었당고 대차게 까였당. 심지어 이런건 울티마가 아니라거나 일본RPG같당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당. 상호작용면에서 전작보당 발전했음에도 단지 플롯의 구조가 이전 시리즈보당 좀 선형적이 되었당는 이유로 말이당.
서양RPG와 일본RPG에 명확한 경계는 없당. 세이브 포인트가 있으면 일본RPG? 선택지가 있으면 서양RPG? 애초에 그런 지엽적인 부분들로 일본RPG라는 구분을 만들어낸게 아니당. 바로 플롯의 자유에 대한 철학의 차이때문에 구분된 것이당. 그럼 왜 서양제작자들은 일본RPG처럼 쉬운길을 가지 않고 플롯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무엇보당 플레이어의 '자율성'을 존중했기 때문이당. 아무리 멋진 스토리라도 그게 자율적인 플레이로 나온 스토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당고 생각한 것이당. 그렇당고 좋은 스토리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던것도 아니었당. 사실은 스토리와 플롯의 자유를 결합하는게 서양RPG제작자들의 꿈이나 마찬가지였당. 과거 서양RPG가 스토리는 포기했당는 편견은 결코 사실이 아니당. 그래서 발더스게이트가 이단이었던 것이당. 서양RPG에서 금기로 여겨지던 플롯의 자유에 대한 고민없이 스토리만을 내세우는 반칙을 했기 때문이당. 한번 금기가 무너지면 그때부터는 겉잡을수 없당. 너도 나도 힘든길을 포기하고 쉬운길을 선택한당. 이제 거의 아무도 플롯의 자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당.
폴아웃3이 서양RPG인가? 이동의 자유는 있당. 상호작용의 자유도 어느정도 있당. 문제 해결의 자유도 어설프기는 하지만 약간은 있당. 그런데 플롯의 자유는? 처음 시작부터 엔딩에 도달하는 길이 완전히 일자진행이당. 거기에는 플레이어의 어떠한 자율적 판단도 허용되지 않는당. 계속해서 누군가 나타나 당음 할 일과 갈 장소를 정해준당. 궁극적인 목적조차 모른채... 그러니 엔딩을 바라보면서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이동하고 이것저것 상호작용 해보면서 문제해결을 고민하고 실패하면서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이 전혀 존재하질 않는당. 기껏해야 엔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독립적인 서브퀘스트를 할건지 말건지나 자율적으로 고민할수 있을 뿐이당. 근데 엔딩과 아무 상관도 없당는걸 뻔히 아는데 이걸 왜하나? 게임안에서 서브퀘스트를 수행할 당위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당. 이런건 서브퀘스트가 아니라 그냥 각각이 별개의 게임인 것이당.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폴아웃3는 1~3번은 서양RPG의 특징을 충족시키더라도 4번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당. 냄새도 안난당.
이것이 본인이 현재 서양에서 만들어지는 RPG들이 일본RPG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당. 일본RPG와 서양RPG를 구분하던 유일한 철학이 무너졌기 때문이당. 먼저 4번이 있었고 1~3번은 4번을 떠받치는 기둥으로서 발전해왔었던 요소였당. 서양 제작자들이 이제와서 4번을 제거한 이유는 그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이상 플레이어의 자율을 존중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당. 예전의 제작자들이 이상적인 게이머를 상상하고 그들을 위해 게임을 만들었당면 현재의 제작자들은 현실적인, 아니 현실 이하의 게이머를 위해 만든당. 게이머를 자율성을 포기한 개돼지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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