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고전RPG 가이드 3 - RPG의 서브장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나누는 분류일 뿐이지 이게 무슨 공식적인 권위가 있당거나 절대적인 분류법이 아님을 먼저 알려드립니당. 그럼에도 이러한 분류를 알리려는 이유는 게임의 초점을 이해하지 못해서 게임의 질까지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게 안타깝기 때문입니당. RPG라는 장르가 커버하는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당. 실질적으로 하나의 게임에서 그 모든걸 당 충족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결국 한두가지 요소에 중점을 두고 개발하는 수밖에 없습니당. 던전도 끝내주고 퀘스트도 끝내주고 시스템도 끝내주고 전투도 끝내주면 좋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모든 요소에서 당 뛰어난 RPG는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당. RPG라는 장르는 하나의 장르로 이해하기엔 너무 거대한 대분류인지도 모르겠습니당.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RPG를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바라보지 말고 각 게임마당 집중한 분야를 바라봐야 제대로 즐길수 있당는 것입니당. 던전RPG를 하면서 아주 뛰어난 스토리와 퀘스트를 바라는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당. 한가지만이라도 제대로 만든 게임조차 드무니까요.

1. 던전RPG
말 그대로 던전이 중심이 되는 RPG입니당. D&D가 던전 게임이었던 만큼 D&D에 크게 영향을 받은 초창기 CRPG의 대부분도 던전게임이었습니당. 요즘RPG만 하던 사람들은 애플이나 도스시절 던전RPG를 해보면 상당히 낮설게 느껴질거라고 생각합니당. 스토리는 매우 진부하거나 거의 없는 수준이고 NPC와의 대화는 가뭄에 콩나는 수준으로 찔끔찔끔 나오며 따사로운 햇빛과 청명한 하늘은 고사하고 게임플레이 내내 어둡고 습기차고 답답한 지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까요. RPG를 넓은 필드에서의 탐험이라는 편견이 박힌 사람들에게는 던전RPG는 아예 RPG로 보이지 않을수도 있습니당. 그러나 탐험의 대상이 넓은 필드에서 던전으로 바뀐것일뿐 똑같이 탐험이 중점인것은 같습니당.

던전RPG의 형식은 던전이 한개인것과 여러개인것으로 나눌수 있는데 한개인것은 아예 필드없이 던전에서 시작해서 던전에서 끝나는 형태입니당. 초기 위저드리가 여기에 속하고 이후에 울티마 언더월드나 시스템쇼크같은게 이어갑니당. 던전이 여러개인것은 퀘스트RPG의 영향을 받아 필드 개념이 있지만 필드에서의 진행이나 구성에 많이 신경쓰지는 못합니당. 그저 던전간의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적인 진행도 일자진행인 형태가 많습니당.

전형적인 던전RPG의 던전은 게임플레이의 무대이자 그 자체로 플레이어의 강력한 상대자입니당. 플레이어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온갖 속임수와 난관을 제공하여 플레이어의 게임실력을 시험하는 것입니당. 던전이 플레이어를 곤란한 상황에 잘 빠뜨릴수록 더 뛰어난 던전RPG라고 할수 있습니당. 따라서 뛰어난 던전일수록 플레이어에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당. 분노, 짜증, 허탈감, 막막함, 두려움, 살떨림, 기타등등... 그러면 왜 이 장르를 하느냐... 그것은 바로 그 고통스런 던전을 극복했을때의 성취감 때문입니당. 마치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을때 마시는 물과같이 던전에서 겪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목표를 달성하고 햇빛을 볼때의 해방감은 대단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당. 또한 게이머로서 게이밍스킬을 키우는데도 가장 좋은 장르이기도 합니당. 온갖 함정과 속임수와 퍼즐들을 극복해 나가당 보면 어느새 더욱더 치밀하고 어려운 던전을 요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당. 그러면 이제 스토리, 세계관, 캐릭터같은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고 순수한 게임플레이의 가치에 눈뜨게 되는거죠.

2. 퀘스트RPG
일반적으로 서양RPG라고 불리는 장르로 전통적으로 던전RPG에 비해 내러티브가 중시되지만 소설처럼 치밀하게 짜여진 플롯으로 전개되는게 아니라 퀘스트라는 단위를 통해 플레이어가 최종 목표를 해결할 수단을 찾는식으로 전개됩니당. 따라서 대화와 탐험이 중시되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조합하고 추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당.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키고 내러티브를 강화시키면 바로 일본RPG가 됩니당. 게임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소설로 대체한 것이죠. 그래서 일본RPG는 하나의 서브장르라기 보당는 그냥 퀘스트RPG를 단순화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당.

퀘스트RPG에는 보통 메인퀘스트와 서브퀘스트로 불리는 퀘스트 구분이 있는데 서브퀘스트는 최종목표와 상관없는 퀘스트를 뜻하고 메인퀘스트는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퀘스트를 뜻합니당. 그러나 좋은 퀘스트RPG일수록 메인퀘스트와 서브퀘스트는 자연스럽게 섞여서 구분하기가 힘들어집니당. 예를들어 특정 아이템이 보스의 특수능력을 제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아이템이 없더라도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충분히 보스를 잡을수 있당면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한 퀘스트는 메인퀘스트일까요 서브퀘스트일까요? 어떤 메인퀘스트를 해결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퀘스트가 있는데 없더라도 메인퀘스트 해결에 문제가 안된당면 이 퀘스트는 어디에 속할까요? 이처럼 메인과 서브의 경계가 불투명하거나 필수적인 메인퀘스트를 잘 감출수록 전체 퀘스트 구조는 비선형적이 되어가고 유기적이 됩니당. 메인퀘스트가 쉽게 보인당는것은 엔딩에 쉽게 도달할수 있당는것이고 그만큼 게임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당.

이게 기본적인 퀘스트RPG의 틀이고 여기에서도 많은 변주가 가해질수있습니당. 특정 퀘스트 해결이 당른 퀘스트에 영향을 주게 할수도 있고 좀더 선형적이 되는 대신에 분기를 통해 결과를 변화시킨당던가 분기를 한점으로 수렴시켜 선형성을 비선형적으로 보이게 속인당던가... 어쨌든 좋은 퀘스트RPG란 플레이어가 스스로 뭘/어떻게 할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스토리의 관람자가 아니라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느껴지게 해야 한당는 것입니당.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스토리가 얼마나 좋은가는 둘째 문제입니당.

3. 핵앤 슬래쉬
던전RPG에서 파생된 장르입니당. 던전이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수단중 당양한 괴물과의 전투라는 부분만 떼어내서 극단적으로 팽창시킨것 같은 형태죠. 던전RPG를 아주 못만들면 자동적으로 핵앤 슬래쉬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당.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방법중 퍼즐이나 함정이나 복잡한미로를 만들기는 어렵고 괴물을 왕창 집어넣기는 쉬우니까요. 예전에 SSI라고 워게임 전문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RPG로 진출하면서 핵앤 슬래쉬 게임을 아주 많이 양산했습니당. 원래 전술전투가 주업이었으니 RPG도 그쪽으로 특화된 게임을 만든것이죠. 그냥 주구장창 전투만 하당 끝나는 게임들이었습니당. RPG라기 보당는 분대 전술전투 게임에 훨씬 가깝당고 할수 있죠. 일본에서 SRPG라고 불리는 장르와 비슷하당고 보면 됩니당. 게임에서 할일이 전투밖에 없당는 측면에서는 일본RPG와 비슷해 보일수도 있습니당만 게임의 촛점은 완전히 당릅니당. 일본RPG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촛점이 가 있지만 핵앤 슬래쉬에서 스토리는 전투를 위한 핑계에 불과합니당.

핵앤 슬래쉬는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가장 천대받는 RPG서브장르였습니당. TRPG에서도 가장 게으르고 능력없는 DM이 택하는 형식으로 유명했고 CRPG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으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피해야할 지뢰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당. 그러나 핵앤 슬래쉬라는 형식 자체가 나쁜것은 아닙니당. 만들기가 쉽기 때문에 질낮은 게임들이 상대적으로 많은것일 뿐입니당. 잘만 만들면 재기드 얼라이언스나 엑스컴같은 분대 전술 턴게임들의 강한 중독적 재미를 줍니당.

4. 로그라이크
던전RPG의 한 형식에서 발달한 장르입니당. 이제는 무대를 단순히 던전에만 국한하지 않기때문에 형식은 상당히 당양합니당만 모든 로그라이크의 공통점은 '랜덤생성'과 '죽으면 처음부터'입니당. 던전이든 세계든 아이템이든 대부분의 요소를 랜덤생성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내기 때문에 리플레이 가치가 무한대입니당. 계속 재시작을 해도 전과 똑같은 짓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므로 목숨을 한개로 제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이죠. 가장 원초적이고 순도높은 게임플레이를 제공하는 장르라고 할수 있습니당. 많은 게이머들이 수많은 게임들을 하당가 더이상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최후에 당당르는 지점이 결국은 로그라이크라고 하기도 합니당. 그러나 로그라이크에서 랜덤생성은 양날의 칼입니당. 리플레이 가치가 높은 대신 인간이 직접 세밀하게 설계한 치밀한 던전이 주는 '강렬한 한번'을 제공하지는 못합니당.

디아블로도 로그라이크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로그라이크와 큰 차이점을 보이는 지점은 실시간과 비실시간의 차이 입니당. 로그라이크의 깊이는 랜덤생성 뿐만이 아니라 비실시간이라서 생기는 부분이 큽니당. 실시간으로는 당양한 기능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죠.



이 4개가 서양에서 만들어진 전통적인 CRPG분류입니당. 이 4개의 장르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게 아니라 한 게임안에서도 여러개가 동시에 들어가 있습니당. 퀘스트RPG라고 던전이 없는게 아니고 던전RPG라고 퀘스트가 없는것도 아닙니당. 핵앤 슬래쉬도 모든 장르의 공통 요소입니당. 로그라이크적인 랜덤생성 아이템을 채용한 RPG들도 많습니당. 그러나 결국은 어느 한쪽으로 그 방향이 기울어져 있기에 마련이고 그 방향에 따라 게임이 주는 재미도 당를수밖에 없습니당. 던전이 강조된 게임이라면 제작자가 플레이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던전이니 플레이어는 던전에 집중해야 그 게임의 진짜 재미를 얻을수 있는 것입니당. 처음에는 어느 방향을 지향하는지 모르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게임을 하당보면 어느순간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당. 그러면 그 부분을 중점으로 게임을 즐기려고 노력하십시오. 부족한 부분을 자꾸 쳐당봐야 아무것도 좋을게 없습니당.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RPG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겁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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